“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말한 분이었는데, 마틴 스코세이지다. 함께 해서 영광이다”라고 말하자 TV 카메라가 마틴 스코세이지를 비추었고, 관객들은 두 사람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기생충으로 감독상과 각본상, 작품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시상식 장면이다.

봉준호의 꿈을 키운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Charles Scorsese)는 영화계의 거장이다. 여든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갱스 오브 뉴욕, 휴고,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디파티드, 아이리시맨 등으로 비평가의 찬사는 물론 상업성까지 인정받은 인물이다. 영화에 대한 그의 발언이 최근 화제가 되었다.

미국의 월간지 하퍼스 매거진 (Harper’s Magazine)에 기고한 글에서 마틴 스코세이지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주도하는 영화 생태계를 비판한다. 영화 예술이 평가절하되고, 외면되며, 가장 낮은 공통 분모인 콘텐츠로 축소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가 고양이 영상이나 슈퍼볼 광고, 슈퍼 히어로 시리즈와 같은 취급을 받는 동영상 비즈니스 콘텐츠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상점을 몰락시킨 아마존을 예로 들면서 그는 이게 스트리밍 플랫폼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극장이 아닌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누구나 쉽고 편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평등한 길을 열어주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개인의 시청 기반으로 주제나 장르를 국한해 영화를 골라주는 알고리즘이 오히려 폭넓은 선택을 제한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의 지적은 옳다. 콘텐츠는 영화만 아니라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 되었다. 예술의 눈이 아니라 양적인 이미지를 동반하는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용어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알고리즘으로 취향을 판단해 들이미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업성이다. 영화 승리호가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자 국내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순위는 이내 내려앉았다. 잘 만든 SF 영화이지만 오리지널 콘텐츠를 밀어주는 넷플릭스의 전략과 무관할 수 없다.

콘텐츠가 가치의 척도가 되고, 알고리즘이 개인화를 지향하는 것은 기술이 선도하는 시대의 전형이다.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물론 분명 문제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예전의 영화 시장이 예술성과 다양성에 우선 순위를 둔 선한 시장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형 스튜디오 위주의 작품들이 독립영화를 주눅들게 만들고, 대중성을 바라는 제작자와 감독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체인형 멀티플렉스 극장은 돈 되는 영화에만 집착했다.

자유기고가 웬디 시프렛(Wendy Syfret)은 영국의 가디언에 쓴 글에서 넷플릭스는 히트작이나 이름난 작품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넷플릭스 안에서 어떻게든 엄청난 시간을 보내도록 유도함으로써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게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에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 다양한 콘텐츠가 존재한다. 할리우드 영화에만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신세계다. 상대적 약자였던 여성이나 소수 인종, 성 소수자 콘텐츠에 그다지 차별을 두지 않는다. 주류 위주의 기존 영화업계나 극장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온갖 콘텐츠로 고객을 붙들어 매려는 상업성이 숨어있다.

아마존과 디즈니까지 뛰어든 스트리밍 시장의 개인별 맞춤형을 지향하는 알고리즘 경쟁은 치열하다. 넷플릭스는 자체 블로그에서 한사람 한사람 개인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을 설명한다. 영화의 이미지까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사람들 각각의 특성을 파악해 영화를 소개하는 사진까지 다르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와 대적하며 일본 시장까지 진출한 국내 토종 OTT 스타트업 왓차(Watcha)의 대표는 이코노미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고객이 매긴 평점은 물론 고객이 어떤 콘텐츠를 검색했는지, 실제로 봤는지, 콘텐츠 재생 중 끊지 않고 얼마나 집중해서 봤는지 등을 수집 분석해 볼거리를 추천한다고 말한다.

평생을 영화에 바친 노감독 스코세이지에게 영화업계의 변화는 천지개벽이다. 코로나19는 극장을 몰락으로 이끌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영화업계가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회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기술이 이끄는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스코세이지의 최근작 아이리시맨도 넷플릭스에 의존했다. 예술성과 상업성도 기술과 더불어 논의해야 하는 시대다.

인쇄하기

이전
다음
4+

소요 사이트를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액수에 관계없이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이 소요 사이트를 유지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후원금은 협동조합 소요 국민은행 037601-04-047794 계좌(아래 페이팔을 통한 신용카드결제로도 가능)로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