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방송 같은 레거시 미디어가 여론을 주도하던 시대는 지났다. 미디어 권력의 추는 갈수록 소셜 미디어로 기울어지고 있다. 최근의 두 사건은 상징적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했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독자적인 소셜 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시장에 내놓았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반이다.”, 우리 돈으로 55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여 트위터를 손에 놓은 머스크는 트위터를 사들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알고리즘을 오픈해 신뢰도를 높이고, 스팸봇을 없애 누구나 이용하는 디지털 광장을 만들겠다고 한다.
트루스 소셜은 빅테크의 폭정에 맞서겠다는 트럼프의 구상에서 비롯되었다. 트럼프는 가짜뉴스 유포와 미 의사당 폭력 난입 사태 유발 등의 이유로 페이스북, 유투브는 물론 애지중지하던 트위터에서도 쫓겨났다. 이것을 빅테크의 폭정으로 표현하면서 아예 새로운 소셜 미디어를 만들었다.
IT 산업이 모든 것을 선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테크 기업을 안수거나 새롭게 창업하는 것을 문제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미디어의 핵심 권력으로 떠오른 소셜 미디어라면 상황이 다르다. 단순한 소통 공간이 아니라 온갖 정보의 용광로가 되어 여론을 움직인다.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공적 영역으로 인식되는 것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대금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자금의 55배나 된다. 세상을 앞서가는 천재적인 괴짜이자 수퍼 리치인 머스크의 언행은 늘 논란이 뒤따랐다. 그가 표현의 자유, 언론 자유를 주장했다. 그의 관심사가 트위터를 통해 미디어의 영역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난 2월에 오픈한 트럼프의 소셜 미디어, 트루스 소셜의 영향력은 아직 제한적이다. 애플 앱스토어에만 접근할 수 있고, 구글 안드로이드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5월 말에 웹 브라우저에 론칭되면 이제 시간 문제일 가능성이 많다. 여기에 트럼프는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다.
머스크와 트럼프의 같은 듯 다른 소셜 미디어 사업은 막강한 부와 권력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일반적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극히 개인적인 특성과 관점의 미디어 평가에서 비롯된 것만 봐도 그렇다. 머스크는 트위터에서 자신에 대한 비판도 가감없이 표출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소셜 미디어는 이들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신문과 방송이 팩트와 보편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다면 소셜 미디어는 자극과 흥미, 정파성으로 인한 파급력이 크다. 가짜뉴스, 여론의 왜곡, 극단주의의 만연 같은 소셜 미디어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 마련은 지구촌의 공통 과제다. 머스크와 트럼프의 소셜 미디어를 바라보는 눈이 긍정적이기만 한 게 아닌 것은 그들 자신이 미디어를 다룰 적절한 인물인가 하는 의문에서 비롯된다.
`머스크와 트럼프의 소셜 미디어를 바라보는 눈이 긍정적이기만 한 게 아닌 것은 그들 자신이 미디어를 다룰 적절한 인물인가 하는 의문에서 비롯된다.`
뼈를 때리는 문장이네요.
굳이 이들이 아니어도 세상에 시끄럽게 떠드느냐 뒤에서 조종하느냐의 차이지 언론이 중립적이란 생각이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배후가 있을 때는 정말 적나라하게 비굴해지고, 배후가 없을 때는 각자의 이익집단에 맞춰 난립 식으로 정보를 흘린다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정치든 경제든 글쓴이의 개인사와 사주들의 이익까지 엮여 언론 신뢰는 그다지 하지 않는 편입니다.
일반적인 서민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언론을 보며 힘이 실리길 바랄 뿐이죠.
맞벌이와 애들 건사로 TV 볼 시간도 없어 결국은 돈이 들어가지 않는 유튜브에서 쪼개어진 방송을 봅니다.
예전에 비해 온갖 방송사들이 쪼개어진 정보로 유튜브를 가득 채웠더라고요.
유튜브가 개인 방송이라는 게 무색해질 정도로….
좀 많다 싶었는데 유튜브 관련 강의를 듣다 보니 방송사의 살기 위한 생존경쟁으로 한국에서는 개인의 파이가 작아졌다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개인 경쟁이 훨씬 치열해졌다는 말은 좀 씁쓸했습니다. 여기서도 밀리나 싶어서요.
결국은 막강한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여론이 형성되는 것은 과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지금이나 별다른 바 없다 느껴집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여론의 결과물이 굉장히 편협하고 극단적이라 느껴진다는 겁니다.
여론의 공론화를 통한 타협보단 힘으로 찍어누른 대립의 결과물을 `합의`라는 포장지로 들이밀고 있다 생각돼요.
과연 이 세상에 공정의 가치를 가지고 여론을 대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결국은 힘의 논리로 끝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