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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요즘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 중 하나다. 모든 아이들은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 이로 인한 산업의 변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맞물리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미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 혹은 지식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2015년에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로 가는 원년으로 선포하면서 ‘소프트웨어 교육 활성화’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특히 초·중·고교의 정규교육과정에 소프트웨어 교육을 포함시켜 조기 교육을 통해 고급인력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교육에 필요한 인프라, 교육프로그램,  전담 교사와 같은 교육 실행에 필요한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채 2018년도부터는  소프트웨어 교육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정부의 정책 목표가 국민들에게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이라면 이미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대학입시에서 단지 이름이 ‘소프트웨어’ 학과라는 이유로 ‘컴퓨터’ 혹은 ‘전산’ 같은 이름의 학과보다 입학 커트라인이 더 높아지고, 많은 초등 혹은 중등학생의 부모들이 정부 교과 과정이 시행되기도 전에  코딩교육을 표방하는 컴퓨터학원을 기웃거리고 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광풍이 사교육 시장에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거창한 포부(?)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아이들에게 ‘의무’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즉 코딩(Coding)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겠다”는 것이 전부이다. 우리 아이들은 ‘코딩’만 배우면 미래를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지금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많이 부족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프로그래머가 필요한 것일까?  산업 현장에서 프로그램 기술은 수 개월마다 변하고 있고 그 주기는 더 짧아지고 있는데 아이들이 살아갈 10년 혹은 20년 뒤에 필요한 기술을 어떻게 알고 가르친다는 것일까? 컴퓨터 학과 졸업생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뽑지 않는다는 미국의 한 기술 회사의 채용 원칙은 단순히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과연 미래에도 단순한 프로그래머가 필요할까? 인공지능의 발달로 이미 사람의 관여 없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지능형 소프트웨어가 전통적인 프로그래머의 영역을 대체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웹페이지를 만드는 ‘html coding’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인기 있는 분야였지만, 지금은 누구나 사용하는 문서작성 프로그램조차 자동으로 웹페이지를 만들어 주고 있지 않은가? 세월이 지나고 그 많은 프로그래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소프트웨어는 코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구글 번역기 같은 언어와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해주는 프로그램을 언어구조나 문화적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 없이 만들 수 있을까? 복잡한 금융상품과 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거래에 대한 판단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거대 금융자본이 수학의 대가들을 스카웃한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프로그래머가 부족하기 때문일까?

사람의 지능을 닮아가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논리학과 언어학 같은 인문적 지식, 신경 및 인지과학, 고도의 수학적 분석 능력, 통계적 분석과 데이터 마이닝 등 종합적인 지적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단순히 프로그램 방법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미래 세대들은 급속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과거 어느 세대보다 자주, 더 빨리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갈 것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 배우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다. 실제 세계에 대한 지식과 그에 대한 건강한 호기심, 그리고 모든 종류의 기술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런 아이들 말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될 사회는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가 아니고 ‘사람 중심의 디지털 사회’이다. 디지털 기술이 가져다 줄 가능성과 위험을 인식하고, 그것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주체로서의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대답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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