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자키 시오리가 우리 반 그 여자 아이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스무 명. 시골학교 아이들이지만 잘 나간다. 6학년은 그렇다. 가족의 감정적 관심과 경제적 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때이니까. 그렇지만 왠지 본인 스스로는 매 순간 갈팡질팡하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존재가 또 6학년이다. 하고 싶은 것도 제법 생기고 아니 그보다 하기 싫은 것에 더 명확해지는 시기라 6학년 담임 경력이 적지 않다고 생각해오던 내게도 시오리는 처음부터 어려웠다. 아니 처음에는 민서(가명)라고 해야겠지만.

새 학년 새 반으로 학교 가는 3월 2일, 아이들만 긴장되는 게 아니라 선생님도 떨린다. 설레어서도 그렇고 설레어 하는 아이들 앞에 서기 때문이어서도 그렇다. 이 첫날을 위해 나는 준비하는 게 있다. 그해 맡은 아이들과 같은 나이였을 때의 내 사진 한 장이다. 촌스럽고 못나 보이는 담임선생님의 옛 사진이 교실 TV 화면에 나타나면 잔뜩 얼어있던 아이들이 키득거린다. 아이들은 웃으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칠판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냐며 어떤 녀석은 비웃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기분과 분위기는 첫 대면보다 한결 편해진 것 같다. 나도 덩달아 웃느라 그 웃던 아이들을 모두를 면밀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 순간에도 민서는 웃지 않고 있었다. 눈에 띌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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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은 이렇게 생기는 건지, 아이들이 3월 첫 주에 작성해 오는 가정환경 조사서에 민서의 엄마 이름과 핸드폰 번호가 없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웃을 일이 없었겠구나’고 나는 섣불리 판단해버렸다. 웃지 않는 민서는 말수도 별로 없었고 수업 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무표정으로 투명인간처럼 존재했다. 도대체 왜 그러나 답답해 하다가도 민서가 집에서 지낼 것 같은 무채색 생활이 눈에 아른거려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한 달쯤 뒤, 여전히 웃지 않던 민서가 화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한 남자 아이의 등짝을 찰싹 때리며. 이유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민서의 또 다른 이름이 ‘칸자키 시오리’이며 민서도 웃을 줄 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아이가 웃는 어쩌면 유일한 세계는 인터넷 사이버 공간이라는 사실도.

시오리는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BJ였다. BJ가 인터넷 방송에서 캠코더나 카메라 등으로 개인방송을 하는 사람인 ‘Broadcasting Jockey’라는 것도 그 때 알게 되었다. 충격적이었다.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먹방, 겜방, 성인방송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등짝 맞던 그 남자 아이를 조용히 불러냈다. 도대체 학교 밖 민서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알아봐야 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듣고 조합해본 결과 민서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게임 캐릭터를 그리는 과정을 또 그 캐릭터로 게임 이야기를 만들어 인터넷 방송에 자주 중계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 이야기를 전해준 이 남자아이는 민서, 아니 시오리의 팬이었다.

얼음공주 민서를 웃게 했다면 그 사이버 행위와 인터넷 공간은 옳은 곳일까. 자신의 방송을 봐주는 불특정 다수의 접속자들로부터 시오리는 행복감을 느꼈을까. 교실 의자에 무표정으로 앉아있던 민서도 분명 시오리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있고 자신의 생각을 들어줄 사람을 찾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민서로서가 아니라 시오리였을 때 존재감을 발견했을지도. 손이 닿고 눈빛이 교환되는 지근 거리에서의 대화를 접어두고 랜선과 와이파이에 의존하여 새로운 이름으로 세탁된 채 이루어지는 만남을 교사인 나는 과연 소통이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시오리 때문에 참 오리무중이다.

 


최일규 선생님은 화성시 동탄에 있는 반송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십니다.

이 글은 지난 해까지 계셨던 화성 매송초등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실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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