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같은 디지털 환경은 새로운 소통의 시대,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을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10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 재스민 혁명 자유의 물결은 아랍의 봄을 알리며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뉴욕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는 빈부격차 같은 자본주의 체제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며 전세계 도시로 확산되었다.
실제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는 일상의 생활이 되었고, 세상은 놀랍게 변모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변화는 오지 않았다. 아랍의 봄이나 월가의 시위는 한때의 열풍으로만 기억될 뿐 역사 속에 파묻혔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민주주의의 전령사로 일컬어졌지만 분열과 반목, 대립과 갈등, 불신과 왜곡의 아이콘으로 더 크게 다가왔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가짜뉴스’를 보통명사로 바꾸어 놓았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가 조작과 왜곡의 통로라는 사실을 알렸다. 소셜 미디어의 개인정보가 새나가 정치 공작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십알단’이나 국정원 댓글로 얼룩졌던 한국은 ‘드루킹’으로 여전히 몸살을 앓고있다. ‘공감’과 ‘추천’은 여론을 만드는 무기였고, 돈벌이에만 매달린 포털은 방관자로 일관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민의를 대신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특정한 목적과 의도를 갖고 여론의 향배를 바꾸어 놓는 행위는 과거에는 주로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자행되거나 권력과 재벌에 밀착한 일부 언론의 그릇된 행태로 나타났다. 디지털의 변화는 편의만 가져온 것이 아니다. 가짜뉴스와 여론 조작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 놓았다. 일방이 아닌 쌍방향은 조작된 정보나 뉴스의 흐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가짜 정보나 뉴스를 만들고, 사실인양 여론을 조작하고, 댓글이나 ‘좋아요’ 등으로 확산하고, 이를 퍼 나르는 것은 동참을 필요로 한다. 내용이 자극적일수록, 대상이 명확할수록, 편을 가를수록 더욱 주목을 받게 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말 앞에 수식어로 붙던 ‘참여’가 가상 공간에서 정반대의 반민주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릇된 참여는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다. 하지만 가상 공간에 더 집착하는 디지털 시대의 불균형적인 생활 행태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끊임없는 몰입, 지나친 연결은 디지털 사회의 폐해로 꼽힌다. 공감 능력을 사라지게 만들고 ‘나’와 ‘우리’만을 부각시킨다. 생각이 다르면 문을 닫고, 편을 나누고, 적대시한다. 갇혀버린 사고 속에서 사리분별이나 객관성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이념이나 정치가 개입할수록 더욱 그렇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 소양으로 디지털 리터러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단순히 읽고 쓰는 것뿐 아니라 디지털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전반적인 능력을 말한다. 이보다 앞서 필요한 게 있다. 거리 두기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생활의 기본이 되었지만 삶의 중심일 수는 없다.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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