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이 쓴 글은 기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흥밋거리나, 디지털 기술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놀림거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에 공개된 GPT-3는 논란의 수준을 “인공지능이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는가”에서 “인간만의 글쓰기는 무엇인가”라는 것으로 격상 시켰습니다.
2019년에 잡지 뉴요커 The New Yorker는 OpenAI의 인공지능 GPT-2가 잡지의 독특한 스타일로 전체 기사를 쓸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했습니다. 이 시도는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많은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GPT-3는 더 많은 데이터로 학습되고 훨씬 더 복잡한 변수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인공지능은 가디언 The Guardian지에 “어떤 로봇이 이 기사 전체를 썼다. 인간들아 아직도 무섭니 A robot wrote this entire article. Are you scared yet, human?’라는 헤드라인으로 편집자도 놀랄 정도로 훌륭한 글을 선보였습니다.
인공지능의 글쓰기는 Grammarly 앱과 같이 스펠링과 맞춤법 검사 등 글쓰기를 보조하는 기능에서, 이메일 쓰기와 같은 간단한 문장구성이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이제는 산문, 시, 보고서, 뉴스레터, 기사, 리뷰, 슬로건 및 대본까지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조사 전문기관인 가트너Gartner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술은 2022년까지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모든 콘텐츠의 30%를 생산할 것이라고 합니다.
글쓰기는 지금까지 인간의 중요한 지적 훈련의 하나로 인식되어왔고, 지식 사회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능력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의 하나인 글쓰기에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인간만의 특성을 지닌 글쓰기가 필요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정형화된 글쓰기를 배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문법을 지키고, ‘기승전결’과 같은 논리적 순서와 단락 배열로 글을 작성하는 방식을 가르쳤습니다. 규격화된 글쓰기는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표준화된 방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그런 글쓰기의 기본을 완벽하게 익히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엄청난 정보와 지식으로 그 내용을 구성합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의 글쓰기는 어떠해야 할까요? 경쟁이라는 관점에서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을 담고 있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리터러시는 점점 더 인공지능과 상호작용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까지 개념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목적이 있는 글
인공지능은 아직 스스로 무엇을 쓸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왜 쓰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주제를 정하고, 그 글의 대상과 소통의 목표를 달성하는 목적 있는 글쓰기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불행히도 지금 우리의 글쓰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입니다. 읽고 싶은 책조차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글을 쓸지 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주제를 주고 평가자의 틀에 맞는 글쓰기를 요구하는 교육 방식은 목적 있는 글과의 거리를 더욱 멀게 할 뿐입니다.
아이들이 평소 삶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하는 것은 목적 있는 글쓰기를 위한 기초 훈련입니다. 대상과 목적(설득, 전달, 공감 등)에 맞게 글의 내용과 형식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요가 아이들에게 매일 짧게라도 일기를 쓰는 것을 권장하는 이유는 이야기할 거리(주제)를 선택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한 것입니다. 구글 알림과 검색으로 관심 분야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것은 주제의 폭을 개인사에서 사회 문제로 확장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부모 혹은 지인들과 공유하는 것은 글을 쓸 때 그 대상이 누구이고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생각하는 동기를 제공합니다.
색깔이 있는 글
예전에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가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소요를 시작하고 학생들의 글을 보면서 그 속에 그의 개성도 관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표준화된 글쓰기, 정답을 요구하는 글쓰기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글에 쉽게 손을 댑니다. 맞춤법, 띄어쓰기, 글의 순서와 내용에 거침없이 소위 첨삭지도를 합니다. 빨간 펜으로 얼룩진 글을 보고 아이들은 그들이 원하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거나 글쓰기를 포기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엄격한 형식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아이들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쓴 글은 목소리는 있지만 영혼은 없다고 합니다. 뉴요커 The New Yorker지의 존 시브룩 John Seabrook은 인간 작가들이 ‘규칙을 구부려서 글쓰기에 색, 성격, 그리고 감정을 부여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규칙을 배워야 하지만, 규칙을 깨도록 격려 받아야 합니다.
윤리적인 글
인공지능은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도 하지도 않습니다. OpenAI의 개발자들은 애초에 GPT-3를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기술이 사람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가짜뉴스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수많은 글로 학습을 하였습니다. 그 글에는 인간의 오류와 편견, 그리고 차별이 포함되어 있고 인공지능은 그것들을 기계적으로 재생산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만든 챗봇 테이는 대화 과정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최근에는 한국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성차별 발언으로 퇴출되었습니다.
일기처럼 혼자 보기 위한 글도 있지만 대부분의 글은 제한된 대상이 있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읽혀집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순식간에 글이 전파되는 디지털 시대에는 윤리적 글쓰기가 더욱 강조되어야 합니다. 타인의 저작권을 존중하고, 자신의 글이 읽는 사람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독자를 배려하는 글쓰기를 가르쳐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작성한 글을 비판적으로 읽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은 미래 ‘글쓰기’ 교육에서 새롭게 다루어야 할 내용입니다. 알고리즘이 어떤 데이터로 학습을 하고, 어떻게 글을 쓰는지를 아는 것은 인공지능이 쓴 글의 한계와 문제점을 알게 해줍니다.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가지지 않는 한 윤리적 글쓰기는 인간의 마지막 영역이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협업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원하는 자료를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정확하고 빠르게 찾아주고, 질문을 이해하여 맥락에 맞는 구절을 책과 자료에서 찾아줄 뿐만 아니라, 특정 주제에 대해 짧지만 완성도 높은 글을 생성하여 글 쓰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획기적으로 줄여 줍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글쓰기에 훌륭한 보조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공지능과의 공동 창작 시도도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2017년 네덜란드 작가 로날드 기파트는, 암스테르담의 미어텐스 연구소와 앤트워크 센터가 함께 개발한 디지털 창작시스템과 협업으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연작소설 <아이, 로봇>의 열 번째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 시스템은 작가가 문장을 입력하면 그 이야기를 이어주는 문장을 제시하고, 작가는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무시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가 설명하는 이 시스템의 핵심은 ‘쓰기 과정에서 인간 작가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룰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최근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AI 던전(Dungeon)의 시작 문구입니다. GPT-3 기술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으로 게임사용자와 인공지능이 서로 문장을 주고받으면서 판타지 세계의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이 게임에서 사람과 인공지능은 공동 창작자입니다.
아직 사람과 인공지능의 공동 창작은 실험적입니다. 그렇지만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과의 협업은 글쓰기의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인공지능과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은 협업과 공동창작 능력을 키워주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미 미술과 음악 분야에는 다양한 협업 툴이 나와 있고, 올해에는 GPT-3 기반의 글쓰기 툴도 출시되었거나 그럴 예정이니 아이들과 함께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이 위대한 작가의 작품에 견줄 수 있거나 뛰어넘는 글을 쓸 날이 올지를 사람들은 궁금해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른 질문을 던져 봅니다. ‘복붙’과 ‘퍼나르기’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글을 쓰는 인공지능은 어떤 존재로 다가올까요? 항상 답은 질문의 뒤에 따라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글쓰기는 어떤 것이어야 합니까.
생각들이 정리되는 순간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간의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글은 인공지능이 오히려 더 신뢰가 갈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전문가가 아닌 이상에야 저 같은 범인은 인공지능이 사기를 목적으로 글을 써도 전문가의 영역이라면 모른다고 해야 할까요?
오히려 경험을 기반으로 한 감동실화… 이런 글이라면 인공지능이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인공지능’이란 걸 깨닫는 순간 감정이 깨지고 ‘글 잘 썼네’ 정도의 평가만 남을 것 같거든요.
감정이입이 동일개체인 사람에게는 되지만, 다른 종?에게는 힘들잖아요, 보통…
인공지능이 슬픔을 느끼거나, 아플거라는 생각이 안 드니까.
인간이 마지막 재미로 통각까지 있는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홍보용으로 쓴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요
윤리를 강조해도 결국 사회적이거나 역사적인 배경으로도 기준이 흔들리기에 ‘절대적 가치’가 있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우리나라 전래동화조차 그런 편견과 차별의 연속이고… ‘충’과 ‘효’에 기반한 개인의 가치같은 거요.
지금 ‘평등’을 강조하며 일어나는 여러가지 현상 중에 과 를 모르고 무조건 이라고 우기는 기준이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것들도 있고요.
다만 인간만의 색을 가지기에는 개인적으로 이 중요할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챗봇 ‘이루다’도 ‘공감’이란 걸 알았다면 뱉을 말과 아닐 말을 구분할 수 있었을텐데… 이건 엄청 고난이도의 챗봇이겠죠? 사리분별 가능한 챗봇^^
전문가적인 영역이라면 미세한 마이크로 공정같은 부분의 논쟁 정도??
혹은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비논리적일지라도 마지막까지 논리적이라 우기며 논쟁할 수 있는 배짱? 여러방면으로 우기면 인공지능도 좀 혼란스럽지 않을까…란 생각이^^
항상 생각이 많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평등’을 강조하며 일어나는 여러가지 현상 중에 ‘차별’과 ‘차이’를 모르고 무조건 ‘평등’이라고 우기는 기준이 대중적으로 퍼져 있는 것들도 있고요.
이 문장이 또 잘려서 올라가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