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평지의 세계가 그렇듯이 고원의 티베트도 인간, 동물, 흙, 대지, 공기, 하늘, 호수, 별, 달, 태양, 숲으로 이루어졌다. 또 평지가 그렇듯이 그곳에도 티베트만이 가진 소리와 냄새가 있다,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Alexandra David Neel, 1868~1969)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인도여행을 시작으로 티베트에 진입(1890)한 여성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녀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1927)과 『티베트 마법의 서』(1929)에서 티베트가 얼마나 험악한 공간인지를 실감나게 설명하고 있다.
해발 5,580미터나 되는 험악한 고개를 한 밤중에 넘어야 했던 다비드 넬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서 벗어나고자 불을 지펴야 했다. 고원의 날씨는 변화무쌍했고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가혹했다. 그녀는 한 겨울 눈 위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며칠 밤을 계속하여 참선에만 몰두했던 티베트 고승들을 상기했다. 그들에게 추위를 견디는 명상을 배운적이 있다. 참다못한 그녀는 라마승에게 배운 투모(tumo)호흡을 시도했다. 이게 안되면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만에 몸은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편안한 느낌이 전신에 몰려왔다. 졸음이 왔다.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 아폴리토 데시데리(Ippolito Desideri, 1684-1733)또한 티베트 선교를 위해 길을 나섰는데 당시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카시미르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40일 정도 걸렸다. 오직 걸어서 왔다. 길은 험하고 좁았다. 종종 폭설과 장마를 만나 길이 없어지고 나아갈 수 가 없었다. 도끼를 구해 나아가는 길을 만들며 전진했다. 한손으로 도끼질을 하고 한손으로 동행자를 부축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길은 눈이 얼어 미끄러지면 바로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 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일행의 앞 뒤 간에 서로 밧줄을 묶어 서로의 몸을 보살폈다. 한낮에 태양이 떠오르면 반사되는 설산의 빛이 눈을 가려 눈에 염증이 생기거나 설맹(雪盲)증세가 오기도 했다. 길을 안내하던 현지 가이드는 결국 티베트 포기를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 할 수 없었다. 그에게 많은 돈을 주어 설득했다. 이러한 날들은 14일이나 지속됐다.
몇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티베트로 가는 여정은 쉽지 않다. 비행기와 기차, 버스를 타고 가지만 여전히 육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산소가 부족해 숨을 헐떡거려야 하고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참아야한다. 그렇게 티베트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이 있다. 바로 포탈라 궁(布達拉宮)이다. 티베트인들이 숭상하는 달라이 라마의 궁궐이다. 궁은 1642년 5대 달라이 라마(1617-1682)시절,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백궁(1648)을 먼저 완성했고 그 뒤 홍궁(1694)이 증축되었다. 백궁은 달라이 라마의 거주와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공간이고 홍궁은 종교의식과 역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미라)이 모셔진 곳이다. 중국의 오성홍기가 펄럭이는 광장에서 올려다보면 포탈라 궁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성곽같다. 달라이 라마가 주문을 걸면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올라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필자는 2004년 포탈라 궁 안으로 들어가봤다. 내부구조는 이렇다. 목재와 돌만으로 이루어진 궁은 컴컴하고 구불구불한 통로가 여기저기 많아 그 끝을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으며 양초, 경전, 버터, 라마승들의 냄새가 그득하다. 천년의 역사를 40분만에 돌고 돌아 나온다.
포탈라 궁을 인공지능(AI)의 기술을 활용해 구현 할수 있다면? 천년동안 쌓여있는 티베트 문헌과 경전, 사람들의 행적, 날씨, 음식, 종교행사, 홍궁, 백궁, 달라이 라마의 영탑, 다녀간 외부인들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첨단의 기술로 스캔하고 디지털로 복원할 수 있다면 어떻게 재현될까? 디지털로 복원된 궁의 내부를 교실에서 학생들과 같이 들여다보고 수업을 하면 어떨까. 학생들은 오. 우. 와.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뜰것이다. 힘들게 가지 않아도 티베트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흥분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한번쯤은 가봐야 한다면 어떤 이유를 들 수 있을까? 전편에서도 언급했듯이 ‘공감’ 과 ‘감각’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인간에게는 춤추는 오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 복원프로젝트가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생명체들의 감각, 즉 소리와 냄새도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만약 이 감각을 소환 하지 못한다면 ‘눈(看)’으로만 학습하는 ‘시각’의 바다에 갇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대자연이 최고의 학습장이 되는 이유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은 모든 오감이 활성화되는 환경에 처해질 때, 비로소 참된 공부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의 공간과 사람들을 알고 싶다면, 될런지 모르겠지만(아님 이미 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소리와 냄새도 불러오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장소와 생명의 본질은 ‘소리’와 ‘냄새’에 저장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육식(六識)을 살아있게 해 줄 수 있는 곳이
티벳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