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콘텐츠를 체험하는 이용자는 360도 가상공간에서 시선의 방향과 움직임이 자유롭다. 스토리텔러의 입장에서는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인 서사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자의 시선을 유도하려 애쓴다. 사람 또는 오브제의 움직임, 사운드, 조명 등을 활용하는 것은 VR 콘텐츠 뿐 아니라 기존 영화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고전적 방법이다. 그러나 VR에서 시선의 자유가 몰입감을 높이는 핵심적 조건일진대, 이용자의 눈길을 붙잡아두는 것이 과연 VR다운 해법일까?

 이에 대해 사슈카 언셀드(Saschka Unseld) 감독은 ‘공간적 스토리 밀도(Spatial Story Density)’를 하나의 답변으로 제시한다. 언셀드 감독은 VR 애니메이션 <로스트(Lost)>(2015)의 제작기를 통해, VR에서는 특정 시점에 한가지 사건만 일어날 경우 묘하게 작위적인 느낌이 들더라고 밝힌다. 우리가 몸담은 현실세계는 주위에서 여러 가지 일이 대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토리와 관련된 볼거리가 단선적으로 제시된다면 이용자로서는 가상세계에 몰입하기 어렵다. 스토리의 요소들은 입체적으로 설계되어 3차원의 가상공간을 어느 정도 채울만큼 밀도가 나와야 한다.  

일본 가수 SETA의 VR 뮤직비디오 <어항(金魚鉢)>(2016)은 공간적 스토리 밀도를 음미하기에 좋은 사례이다. 거울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이용자는 소녀의 방에 걸린 거울을 통과해 거울 반대편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소녀의 방과 거울대칭을 이루는 그 공간에서 소녀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책장이 저절로 넘어가고 주전자가 알아서 돌아가고 방문이 제풀에 여닫힌다. 그런 와중에 곳곳에 걸린 거울에 소녀의 모습이 희끗희끗 비친다. 이용자는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거울에 비친 소녀를 찾아 360도 공간을 둘러보게 된다. 온갖 살림살이가 스스로 움직이는 묘한 방에서 소녀는 부재하면서도 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항>은 뮤직비디오라는 장르적 특성상, 비선형적 성격이 시각 정보에 제한된다.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선율과 가사는 가상공간을 초월하여 작품 전체에 강력한 통일성을 부여한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이 시선의 자유에 근거하여 VR을 ‘위험한’ 매체로 규정했음을 상기한다면, VR 뮤직비디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르이다. 공간적 스토리 밀도에 압도당해 스토리를 ‘발견’하지 못할 위험성이 선율과 가사의 스토리를 통해 손쉽게 무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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