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큘러스스토리스튜디오(Oculus Story Studio)의 사슈카 언셀드(Saschka Unseld) 감독은 VR 콘텐츠의 체험에서 ‘의례(ritual)’가 사라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영화관에서는 관객이 영화상영 시작 전에 자리를 찾아 앉고 영화관의 조명이 꺼지는 등의 의례를 거치는 데 반해, VR에서는 그런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셀드 감독이 말한 ‘의례’는 영화학자인 엘새서와 하게너(Thomas Elsaesser & Malte Hagener)가 문학이론가 제라르 주네트(Gérard Genette)에게서 빌려온 ‘파라텍스트(paratext)’ 개념과 닿아있다.
파라텍스트는 텍스트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서 전환과 교류의 공간을 만들어,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의 이행을 완만하게 한다. 엘새서와 하게너는 영화 관객이 현실에서 스크린의 가상세계로 진입하는 경계를 파라텍스트로 설명한다. 영화관의 외관, 영화 포스터 등의 광고, 음료수와 스낵 구입, 영화 예고편 감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영화의 파라텍스트는 러닝 타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관객이 가상세계로 향한 ‘문턱(seuils)’을 넘도록 ‘작업’을 시작하는 셈이다.
반면, VR 콘텐츠의 이용자는 장비만 갖춘다면 시공간의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특화된 설비와 장소를 필요로 하는 로케이션 기반 VR을 예외로 하면, 이용자는 HMD와 헤드폰, 콘트롤러 등을 착용하고 신체조건에 맞게 조절하는 절차 정도만 거칠 뿐이다. 따라서 VR 콘텐츠를 체험할 때 현실세계에서 가상세계로의 진입이 영화에 비해 급작스레 일어난다.
액자구성은 VR 콘텐츠에서 파라텍스트가 약화되는 문제를 보완하는 장치로 유용하다. 액자구성은 액자가 그림을 둘러싸듯 외부이야기가 내부이야기를 하나 이상 포함하는 서사적 기법이다. 일반적으로, 외부이야기와 내부이야기 사이의 길항관계를 통해 현실 인식을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며, 독자/관객/이용자로 하여금 전체적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도록 유도한다. VR 스토리텔링에 대한 모색이 한창인 현 시점에서 액자구성의 서사적 활용도가 높은 VR 콘텐츠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액자구성을 통해 현실에서 가상세계로 넘어가는 문턱을 낮춘 사례는 적지 않다.
<유령의 집(Saturns Barz)>(2017)은 영국 밴드인 ‘고릴라즈(Gorillaz)’의 VR 뮤직비디오이다. 왼쪽 그림과 같이 기차의 식당칸에 놓인 태블릿 PC를 통해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액자구성을 취한다. 외부이야기에서, 이용자는 달리는 기차 안으로 원격현전하여 360도 가상공간에 익숙해질 시간을 갖는다. 태블릿 PC 안에서 밴드가 음산한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기차 역시 터널에 들어서며 암전된다. 곧이어 이용자는 오른쪽 그림에 보이는 ‘유령의 집’ 안에서 밴드를 맞이하게 된다.
고릴라즈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이루어진 밴드다. 실사 대신 인공적으로 제작한 이미지와 가상현실 기술을 접합한 뮤직비디오는 이 밴드의 가상성과 성공적으로 조응하는 셈이다. 밴드가 온갖 괴물과 살아있는 무생물로 충만한 유령의 집에서 나서는 순간, 이용자도 태블릿 PC에서 빠져나온다. 시작과 끝에서 액자로 기능하는 기차 식당칸은 이용자에게 현실과 유령의 집 사이에 위치한 점이지대로 기능하게 된다. 또한 VR 애니메이션 속 VR 애니메이션이라는 구성은 내부이야기와 외부이야기의 매체적, 장르적 동일성을 완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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