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연출된 현실을 담는다. 조롱한다는 의미의 ‘모크(mock)’를 다큐멘터리와 합성하여 ‘모큐멘터리(mockumentary)’라고 부르기도 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인위성을 조롱하며 현실의 재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가상현실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개들의 섬-제작 뒷이야기(Isle of Dogs Behind the Scenes)>(2018)는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개들의 섬(Isle of Dogs)>의 트레일러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VR 영상으로, 공간분할을 통해 가상과 현실을 병치시켜 보여준다. 왼쪽 이미지와 같이, 개 캐릭터들은 애니메이션 세트장에서 마치 인간 배우들처럼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해 설명한다. 캐릭터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세트장 맞은편에는 오른쪽 이미지와 같이 현실세계의 제작진과 작업공간이 보인다.

세트장의 개 캐릭터들이 사람의 말로 인터뷰하는 모습은 당연히 애니메이션 제작 공정을 거쳐 구현된 허구다. 영화나 사진과 같은 실사(實寫)의 기록에 필연적으로 우연적 요소가 개입되는 것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이미지와 움직임 하나하나가 애니메이터의 손길을 거쳐 인공적으로 창조된 것이다. 한편, 세트장의 맞은편에 보이는 작업공간에서는 제작진이 캐릭터, 소품, 배경 등을 작업하고 있다. 작업공간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인터뷰 중인 캐릭터를 애니메이트 하는 과정이 드러난다. 캐릭터들의 인터뷰를 담은 트레일러 영상이 그 인터뷰 모습의 제작과정까지 동시에 보여주는 메이킹필름의 성격을 겸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메이킹필름 영상은 카메라의 앞과 뒤, 즉 완성된 결과와 제작 현장을 교차해 보여주며 극적 효과를 노린다. 반면, 이 트레일러는 세트장과 작업공간을 360도 가상공간에 나란히 놓아 대비시킨다. 제작진의 시간은 타임랩스 방식으로 재빠르게 흘러가므로 인공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반면, 캐릭터의 인터뷰 장면은 타임랩스와 같은 시간적 조작이 없으므로 움직임과 분위기가 자연스럽다. 세트장의 가상적 캐릭터들이 현실 속 작업공간의 제작진보다도 오히려 현실감을 자아내며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뒤흔드는 셈이다.

이용자는 캐릭터의 인터뷰 모습과 제작진의 작업공간을 번갈아 지켜보며, <개들의 섬>에 대한 정보를 메타적 층위에서 비선형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모순형용이 ‘가상현실’이라는 또다른 모순형용과 만나 가상과 현실의 대조와 접합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쳐보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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