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서 모로 누워 TV를 보는데 아이가 눈에 거슬린다. 벌써 2시간째 게임을 하고 있다. 아이는 TV 바로 앞에 엎드려 손가락을 화려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몇 번 시계를 훔쳐보다가 민하야, 이제 그만. 했다. 아이는 들은척도 하지 않는다. 나는 몇 번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연기하다가 야! 정말 이 놈이. 아빠가 말하잖아. 하며 냅다소리를 질렀다. 그만 하라니까? 아빠말 안들려? 아이는 좀 놀란듯 그러면서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나를 쳐다본다. 게임기는 여전히 손에서 불빛을 발하고 있다. 나는 소파에서 자세를 고쳐 앉고 좀 화가 났다는 듯한 몸짓을 하며 말했다. 너 지금 얼마나 오래 하는 줄 알아? 아이는 그 말을 듣고 무언가 할말이 있다는 듯 벌떡 일어나 나에게로 온다. 그리고 나를 빤히 본다.
아빠는 왜 보고 싶은 거 보고 나는 왜 안돼, 응? (어라. 이게?) 아빠는 어른이잖아. 그건 불공평해. 시끄러. 들어가 치카하고 잘 준비해. 싫어. 너. 혼난다.
내가 붉은 인상을 쓰자 아이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화장실쪽으로 가는 듯했다. 그런데 잠시 멈칫 하더니 TV쪽으로 뛰어간다. 그러더니 확 전원을 뽑는게 아닌가. 어라, 이 놈의 시키가..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가 문을 잠근다.
아이들도 자유와 평등의 시간을 원한다. 어른만 그런거 아니다. 부모가 아이의 친구가 못 되는 이유중의 하나가 사랑은 충만한데 평등함을 주지 않아서라고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적 있다. 왜 아빠는 하고 나는 안돼? 하고 대드는 아이에게 TV와 게임기는 같은 놀이일 뿐이다. 놀이에 어른과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빠는 어른이잖아! 하는 유치한 위협은 아이에게 먹히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어른의 개념이 없다. 아이들은 놀이와 재미로 움직일 뿐이다. ‘어른’ 이라는 말로 아이를 움직일 순 없다.
아이는 화장실에서 치카치카를 하고 있을까. 살짝 문을 열어보니 아이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찔끔거리고 있다. 미안하고 부끄러워진다. 아이가 TV 코드를 뽑는 것은 유관순의 만세! 대한독립만세! 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며 자신도 아빠처럼 평등과 자유를 원한다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거울에 비춘 아이는 칫솔을 입에만 물고 있다. 시무룩한 어깨를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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