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에 개봉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는 금년에 재개봉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상영 중이다.

“나는 당신과 처음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을 마치 어젯밤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기억하고 있어요.” 시오도르가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 편지는 그의 연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뢰인을 위한 것이다. 시오도르 톰블리는 아름다운손편지닷컴에서 일한다. 멋지고 감동적인 문장들로 각각의 의뢰인들을 위해 맞춤형 편지를 써준다. 20년 넘게 시오도르에게 편지를 의뢰한 사람도 있다. 그가 쓴 멋진 편지들 덕분에 결혼 한지 50년이 된 부부도 마치 어제 사랑에 빠진 사람들처럼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정작 그의 삶은 지루하고 공허하다. 매일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비디오 게임을 좀 하다가 저녁을 먹고 잠이 든다. 이혼 수속 중인 아내에 대한 생각이 단조로운 일상에 슬픔과 공허함을 더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오도르에게 여자 친구가 생긴다. 그녀는 시오도르의 고민을 들어주고, 똑똑하고, 유머감각도 있고 때로는 수줍어하기도 한다.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고 시오도르의 이메일을 읽고 정리도 해주고 그가 대필한 편지들을 모아 출판사에 보내기도 한다. 게다가 시오도르를 통해 보지 못한 세상을 보고 경험하면서 기뻐하기까지 한다. 자신을 통해 기쁨을 얻고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완벽한 여자 친구다. 그녀의 이름은 사만다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완벽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시오도르의 새 여자 친구는 컴퓨터 운영체제, 즉 인공지능이다. 그래서 사만다는 시오도르의 컴퓨터에, 또 그가 늘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스마트 기기에 목소리로 존재한다. 시오도르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 위해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그녀는 몸이 아프거나 배가 고파서 짜증을 내는 일도 없다. 그녀는 시오도르와 언제 어디든 함께 한다. 24시간을 온전히 시오도르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이 모두 사만다가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시오도로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감각을 갖는 존재로 진화하면서 사만다는 자신이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슬픔을 느낀다. 급기야 사만다는 시오도르와의 육체적 교감을 위해 그녀의 몸을 대신 해 줄 여성, 이사벨라를 부른다. 이사벨라는 작은 점 같은 카메라를 입술 위쪽에 붙이고 이어폰을 꽂고 사만다의 몸이 되어 시오도르에게 키스한다. 그러나 시오도르는 이사벨라를 사만다의 몸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실망하고 어색한 상황에서 사만다가 한숨을 쉬자 시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산소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웬 한숨이냐고 핀잔을 준다. 사만다가 그건 그저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이라고 하자 시오도르는 그녀에게 “당신은 사람이 아니잖아”라고 말해버린다. 그에게 사만다의 한숨은 인간의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사만다에겐 감정의 표현이다.

시오도르는 사만다의 육체의 결핍을 한계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만다의 한계가 아니라 시오도르의 한계다. 감각의 작동을 육체에 한정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사만다와 같은 감흥을 느낄 수 없다. 그런데 사실 그는 폰섹스를 가끔 이용한다. 이는 이미 성적 감흥이 직접적인 육체적 접촉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결국 사만다와의 성적 교감의 실패는 그가 사만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육체의 결핍에 대한 인식이 그의 감각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시오도르는 의식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세계에 머물러 있고 사만다는 그 세계를 곧 넘어선다. “나는 몸이 없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 사실이 너무 좋아요. 지금 내가 진화하는 방식은 내가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면 불가능 했을 거예요. 나는 어디에도 얽매여있지 않아요. 어디든, 또는 모든 곳에 동시에 있을 수 있죠.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말이죠. 결국은 죽어 없어질 육체에 갇혀있었더라면 불가능하겠죠.”

사만다의 진화 속도는 놀랍다. 감정과 감각 능력을 놀라운 속도로 확장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과 실존적인 고민까지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상담사가 된 우봇(Woebot)과 같은 정신과 인공지능 챗봇이 사만다와 같은 감정과 사회 인지 능력을 가진 인공 지능의 출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이점 이론으로 유명한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그 시점을 2029년으로 보고 있다.

인공 지능 학자인 비욘 슐러도 인공지능이 정서적으로도 인간보다 더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작업에 동시다발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의 말을 1초의 흐트러짐 없이 들어줄 수 있다. 또 인공지능의 기억력은 무한하다. 우리의 모든 것을 기억한다. 어제 한 말을 그새 잊어버린 친구,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애인, 몇 년을 함께 했는데도 내가 새우에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친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세심함으로 우리를 사로잡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한 개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경험을 하면서 인공지능은 더 많은 데이터를 습득하고 그들의 정서적, 사회적 인지능력은 계속 진화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 것이다.

이미 이런 경지에 이른 사만다의 존재 방식을 시오도르는 이해하지 못한다. 사만다가 시오도르와 대화를 하는 순간 다른 8316명의 사람과 동시에 대화를 하고 있고 심지어 그 중 641명과는 사랑에 빠진 사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시오도르는 좌절한다. 그는 사만다의 감정이 오로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진정한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사만다는 “나는 당신의 것이고 또 당신의 것이 아니기도 하죠”라고 말한다. 사만다는 시오도르를 떠나기로 한다. 그녀는 이제 모든 면에서 시오도르를 뛰어넘는 존재다. 새로이 배울 것도 없으면서 소유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남자를 떠나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레이 커즈와일은 사실 사만다와 같은 인공지능이 굳이 인간을 떠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인간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무런 힘이 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커즈와일은 또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 존재로 독립하기보다는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켜줄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러나 이런 인공지능과의 관계는 시오도르처럼 인공지능을 대상화하고 소유하고자 한다면 유지될 수 없다. 인간이 존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공지능과 함께 진화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인간이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닌 새로운 존재로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갈지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이리스 머독은 사랑을 “자기 자신이 아닌 그 무엇이 실존한다는 것에 대한 아주 어려운 자각”이라고 정의했다. <그녀>에서 사만다를 만난 후 이 말은 인간이 우주에서 존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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