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에 개발된 페니실린이 1946년 상용화될 때까지 죽지 않아도 될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2015년 동물실험을 통해 이론적으로 입증된 생명연장이 하루빨리 인간에도 사용 가능해져서 불필요한 죽음을 최소화해야 한다.” – 제임스 스트롤(James Strole)-
2016년 3월에 방영된 KBS ‘명견만리’ 에서는 인간 120세 시대의 도약을 알려주었다. 리세 키예르(Anne Lise Kjaer), 스티브 호바스(Steve Horvath), 고든 리스고우(Gordon Risgou)등 전 세계 내로라하는 미래학자, 생명과학자들이 적게는 15년에서 많게는 80년 사이 120세 시대가 열릴 것이며, 2천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120세까지 살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부호들은 늙어서 죽지 않고 오래 사는 ‘불로장생’을 화두로 삼고 관련 연구에 이미 집중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알려진 대로 구글은 죽음해결하기가 목표인 자회사 ‘칼리코’(Calico)를 설립하고, 500살까지 사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 ‘구글벤처스’를 세웠다. 구글의 철저한 보안은 악명 높지만 수명 연장에 관련된 유전자인 foxo3를 닮은 약물이 이미 개발됐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페이팔(PayPal)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Thiel)도 인간 수명을 120살로 늘리는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는 이미 므두셀라재단(Methuselah Foundation)에 350만 달러를 기부했다. 가장 오래 산 성서 속의 인물에서 이름을 딴 이 재단(므두셀라)은 세포 손상과 과다 분열, 미토콘드리아의 돌연변이를 포함한 7가지 형태의 노화 치료약물을 연구하고 있다. (므두셀라재단의 연간 운영예산은 500만 달러다.)
오라클(Oracle Corporation)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통념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고 <엘리슨 재단>을 설립했다. 1997년에 설립된 ‘엘리슨재단’은 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매년 수십만 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벤처 캐피털리스트인 폴 글렌(Paul Glenn)이 1965년에 만든 <글렌의학연구재단>은 노화방지 분야에서는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다. 이 재단은 2007년부터 글렌상을 제정해 해마다 노화 방지에 성과가 기대되는 학자들에게 각각 6만 달러의 상금을 제공하고 있다. 글렌재단은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솔크연구소, 메이요클리닉 같은 대형 연구기관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이 두 재단(글렌의학연구재단/엘리슨 제단)은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어느 정도 진척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례로 2004년 하버드 대학의 에이미 웨이저스(Amy Wagers)교수는 글렌 재단과 엘리슨 재단의 부분적 지원을 얻어 어린 쥐와 늙은 쥐의 피를 순환되도록 한 ‘클라이브 맥케이’의 실험을 반복했다. 그녀는 맥케이의 실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GDF11이라는 단백질을 찾아냈다. 어린 쥐의 피에는 흔하지만 늙은 쥐 에는 희박한 GDF11이 쥐의 역노화 현상을 초래하는 최대의 원인임을 밝혀낸 것이다.
다가온 노화와 죽음을 거부하고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사람에 따라 의미와 가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의미와 가치를 따지는 사람들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장사나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부의 추구와 목표달성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도 자신들만의 생사관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여 ‘죽음 장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욕먹을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과 죽음의 의미를 조금 생각해보자면, 인간은 생명의 존재원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죽음을 거부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자유인은 어떤 면에서 ‘물질’과 ‘소유’의 개념을 떠난 사람들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물질에 집착하는 사람들치고 자유인은 없다는 것이다. 물질과 소유, 그건 자본에 갇힌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걸 붙잡고 있지 않으면 두렵고, 외롭고, 고독해서 쓰러지는 사람들이다.
그럼 자유인은 누구인가? 물질을 떠난 노인들이다. 인생의 희로애락 – 춘하추동- 생로병사의 큰 사이클을 몇 번씩 돌아본 사람들 바로 노인들이다. 생물학적으로 몸이 노화되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그건 바로 인생의 ‘통찰’이다. 생은 언제가 쇠퇴하고 소멸로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
자유인은 누군가의 멘토가 될 수 있다. 부드럽고 평범하고 인생의 봄-여름-가을-겨울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멘토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재벌이라고 누군가의 멘토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폐, 권력, 명예, 소유를 무기로 하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위압을 줄 수는 있어도 존경을 받기는 힘들다. 돈과 권력은 있지만 웃음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지만 돈 밝히는 사람치고 유머 있고 너그러운 인간 찾기 힘들다.) 고로 죽음을 앞둔 노인은 자유인이 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고 그런 사람은 인생의 통찰로 타인에게 부드러운 멘토가 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보이지 않는다. 지혜는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눈이 아닌 귀(청각)와 내면으로 축적하는 것이다. 동양이건 서양이건 성인과 멘토의 반열에 올랐던 사람들은 모두 그러했다. 평범했지만 물질을 구걸하지 않았고 죽음을 거부하지 않았던 자유인이었다. 그들은 인생의 겨울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봄과 가을만을 선택하려 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공자, 노자, 예수, 달라이 라마, 박지원, 정약용 모두가 그러했다.
왜,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지겹지 않은가? 여름이 되면 가을이 기다려지고 가을이 되면 겨울이 기다려지는가? (모든 사람이 똑같이 봄만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건 사람마다 다르고 매년 다른 봄이 오기 때문이다. 같은 봄이라도 작년과 올해 그리고 내년의 봄이 다르기 때문이다. 온도, 습도, 냄새, 소리, 향기, 기운 모든 것이 작년과 올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기 때문에 지겹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인간이 생-노-병-사 에서 생과 젊음만 유지한다면 그건 뭘까? 행복일까? 아니다. 지옥이다. 지옥의 특징은 동일과 반복이다. 동일한 계절과 일상, 그건 무료하고 건조한 삶이다. 봄만 계속되는 삶, 가을만 계속되는 삶, 그게 신선하고 좋을 리 없다. 지옥이 어디 따로 있을 것이 아니다. 하여 생명의 반대의미는 죽음이 아니고 동일한 ‘반복’이다. 생명은 매일 고유한 리듬(파동)을 가지고 우주와 함께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겹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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