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초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막을 내렸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 알파고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 동안 인공지능이 범접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여겼던 바둑의 세계에, 그것도 20여년 동안 바둑계의 최고수로 군림했던 이세돌 9단에게, 인공지능 ‘알파고’가 도전장을 내밀고 결국 대국을 승리로 이끈 이번 대결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다수 ‘인간’들의 예상을 뒤엎은, ‘인공지능’의 승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알파고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의 첫 대국 승리 후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라며 기염을 토했다. 그야말로 인공지능 신(神)의 강림이었다. 국내외에서 엄청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어지러운 총선 국면인데도 정치 이슈를 포함한 다른 소식들은 ‘알파고’에 묻혔다. 여기저기서 알파고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간 어디에 있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물 만난 고기처럼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불어닥친 이 같은 미증유의 사태에 그들이라고 해서 더 나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정보와 준비 없이 대국에 임해 잇따른 충격적인 패배에도, 내내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이세돌 9단을, 인간의 최후 보루처럼 여기며 그의 한 수, 한 수에 일희일비했다. 대국이 진행될수록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알파고의 능력에 두려움과 경외감을 품기 시작했다. 인간의 패배가 아쉬운 나머지 ‘불공정 게임’이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이번 대국의 승자는 알파고도 아니고 이세돌도 아닌 ‘구글’이라는 점을 뒤늦게 깨닫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구의 승리이고 누구의 패배인가
바둑은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이번 대국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실 이번 대국을 바둑의 문제로만 국한해서 본다면, 이세돌 9단의 패배에 대한 아쉬움에 감정이입을 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이번 대국을 바둑의 문제, 그것도 승패의 문제로 접근할 경우, 우리는 이번 대국이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된다.
알파고는 바둑에 최적화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다. 이번 기회에 널리 알려진 바대로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으로 자가학습이 가능한 알고리즘이다. 알파고는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Monte Carlo tree search, MCTS)이라는 기존의 방식에다 컨볼류셔널 뉴럴 네트워크(ConvNet), 정책네트워크(policy network), 가치네트워크(valule network)와 같은 기법을 병합한 딥러닝을 통해 발전해 나가는 알고리즘이다.(참고- 프로기사를 이긴 인공지능은 바둑을 어떻게 이해할까)
한 마디로 말하면 알파고는 그 동안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인간의 명령을 단순히 수행하는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뜻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통해 우리는 승패를 떠나서 어떤 한 분야에 최적화된 인공지능의 놀라운 능력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선험적으로 제한하고 있었던 인공지능의 확장 가능성이 훨씬 방대하다는 점도 함께 말이다. 이번 대국을 지켜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란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 연산기능을 넘어서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영역에까지 인공지능의 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확인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알파고가 바둑 최고수를 상대로 상황에 맞게 최적의 수를 찾아가는 장면은 그 동안 우리가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알파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
알파고의 승리를 인공지능의 승리 혹은 인간의 패배라는 관점으로 단순화시킨다면 이번 대국은 한 판의 요란한 스포츠 이벤트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세돌 – 알파고 대국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번 대국을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어떤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 기술의 비약적 발전 속도
우선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 발전 속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국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알파고의 일방적인 승리를 예상한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과학계나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중국계 프로기사 판 후이 2단과 대결한 지 불과 몇 개월만에 알파고는 놀라운 자가발전을 보여주었다. 머신러닝, 딥러닝과 같은 기술의 혁신은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냈다.(참고 – 머신러닝시대의 도래)
알파고는 하루에 3만 번의 대국을 치를 수 있다. 사람으로 치면 1000년이 걸릴 100만 번의 대국을 알파고는 한 달만에 치를 수 있다. 이렇게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면 알파고의 하루는 인간에게 35. 7년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과의 시간 격차는 알파고가 진화할수록 점점 커질 것이 자명하다. 알파고가 짧은 시간에 자가학습을 통해 비약적 발전을 꾀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기 힘든 바로 이러한 시간을 압축하는 ‘속도’의 힘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기술의 놀라운 발전 속도는 비단 인공지능 분야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에서 의제화된 것처럼 인공지능, 로봇, IoT(사물인터넷), 3D프린팅,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등의 제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디지털 기술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의 지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 전문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기술이 인간을 넘어서는 ‘특이점 singularity’ 시대가 도래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분석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 인간 영역의 대체, 노동의 종말
인공지능을 선도적으로 도입했던 금융업의 경우,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인간에게는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필요한 업무과정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해낸다. 금융 관련 최고의 전문가들이 장악했던 월스트리트는 이미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알고리즘이 대신하고 있다. 의료분야에서도 인간이 하기 어려운 고난이도 수술을 다빈치로봇이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례가 속속들이 발표되고 있다. 앞으로 의료 분야에서 보게 될 인공지능과 로봇의 활약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인자율주행자동차의 눈부신 발전은 이미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노기술이나 바이오기술과 결합한 인공지능 연구는 이미 가장 촉망 받는 분야로 자리잡았다.
이렇듯 지금껏 인간이 자신들의 고유영역이라고 생각해 왔던 분야에서조차 인간의 노동은 인공지능에 의해 많은 부분 대체될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혁명이 향후 20년 이내에 직업의 절반 가까이를 대체할 것으로 분석한 옥스포드 리포트(2013)는 이제는 놀라움과 충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잡았다.(참고- 로봇혁명 : 향후 20년 이내에 일자리의 절반이 로봇으로 대체된다) 주로 육체노동을 대신해 왔던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정신적ㆍ지적 노동까지 대체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인간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서비스 직종이나 사무관리 직종과 같은 중산층의 기반이 무너질 것은 분명해 보이고, 기계가 대체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왔던 기자, 변호사, 세무사, 약사 등 전문직 분야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도 로봇과 인공지능의 진화로 인해 500만개의 일자리가 대체되거나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
로봇과 인공지능 기반의 자동화가 일으킬 사회적 파장은 실로 가늠하기 힘들다. 실업은 일상이 될 것이고 부의 편중과 격차는 극심해질 것이다. 정보기술을 독점한 계층이 사회를 장악하게 되리라는 것은 어쩌면 상식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중간노동의 소멸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인간의 특성을 규정하는 데 가장 중심적인 부분이었던 ‘노동’이, ‘도구적 존재’인 기계에 의해 대체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인간이 인간과 경쟁하던 시대에서 인간이 기계와 경쟁해야만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은 이제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 기술에 대한 인간의 통제는 가능할 것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급속하게 발전하는 기술에 대해 인간의 통제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기술이 과연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만 발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랜 논란거리다. 그 동안은 인간이 어떻게 주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앞서 잠시 언급한 기술 발전이 인간의 능력을 앞지르는 ‘특이점’ 시대가 도래한다면 과연 그때에도 이와 같은 생각이 통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간의 순차적인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약한 인공지능’의 시대라면 이 같은 우려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알파고를 비롯한 지금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인공지능은 아직까지는 ‘약한 인공지능’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자의식을 갖고 독립적 판단과 사고, 행위를 수행하는 ‘강한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지금 추세라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그 시기가 훨씬 빨리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기술을 넘어선 기술’, ‘인간보다 강한 기술’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기술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우려는 벌써 나오고 있다. 이번 알파고 대국이 끝나고 기자회견 장에서 일본기자는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대표에게, 알파고의 실수를 묘수로 판단한 것처럼 인공지능에 의한 의학적 오류를 의학적 효과로 판단한다면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다시 말해서 인공지능의 오류 가능성이 있는데도 인간의 생명을 좌우하는 의료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하사비스는, 바둑과 의료 분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전제한 뒤, 만일 인공지능을 의료에 적용한다면 매우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답했다.
기술에 대한 인간의 통제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다. 다만 ‘특이점 시대’의 기술은 이전 시대의 기술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기술에 대한 인간의 통제가 인간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는 사태에 우리는 직면해 있는 것이다.
-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 가치, 교육
‘특이점 시대’의 도래로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오래된 윤리와 가치 체계는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선 우리는 인간의 고유 특질이라고 여겼던 ‘사고’, ‘직관’, ‘추상’, ‘창의’와 같은 영역에서조차 기계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인간의 본질이었던 ‘노동’의 급속한 종말은 ‘인간’의 규정부터 새롭게 정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과 기계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술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윤리와 가치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변화한 시대의 새로운 윤리규범의 창출과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하더라도 기술에 대한 인간의 주도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윤리와 가치가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자리잡아야 한다.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는 기술의 남용, 오용, 비윤리, 불평등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본의 무한 증식에 기댄 기술의 무정부적 발전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제도적 장치들도 마련되어야 한다.
윤리와 가치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태어나서부터 디지털 시민(Digital Native)으로 살아가게 되는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이다. 디지털 시민으로 살아갈 세대들을 위한 ‘디지털시티즌십’ 교육의 필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능력을 키우는 교육과 더불어 윤리, 규범, 안전 등에 관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보다 앞서서 이러한 고민을 해 온 나라에서는 이미 디지털시티즌십 교육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교육 내용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과거의 지식이 현재의 지식으로, 현재의 지식이 미래의 지식으로 직결되지 않는 현실에서, 다음 세대를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과거의 지식을 답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배움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이나 체계도 새롭게 구성되어야만 한다. 기술 사회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답을 찾아야 한다.
- 인공지능과 기술 발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준비와 대응
하지만 인공지능과 기술 발전에 따른 여러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준비하고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이번 이세돌-알파고의 대국을 두고 우리 사회는 여러 면에서 ‘냄비 근성’과 ‘졸속적 행태’를 반복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정부가 발표한 ‘민관합동 인공지능 컨트롤타워’ 추진을 들 수 있다. 사회의 파장이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정부가 매번 내세운 방책이 바로 ‘민관합동 컨트롤타워’다. 지금껏 ‘타워’가 있었지만 제 기능을 한 경우를 찾아보기는 거의 힘들다. ‘메르스 민관합동 컨트롤 타워’처럼 무슨 일이 있고 난 후에야 허겁지겁 그럴 듯한 포장으로 ‘사후약방문’ 격의 활동만 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이는 IT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국이 지니는 중요성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 의미와 향후 전망에 관한 분석과 준비 없이 덜컥 기구만 만들어서 무엇을 하자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한 나라의 정책이 이렇게 졸속으로 추진된다면 과연 어느 누가 신뢰할 수 있을까.
이러한 현상은 비단 정부에 그치지 않았다. 사회의 흐름과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해야 할 언론은 거의 제 기능을 상실했다. 인공지능과 기술혁명에 관한 논의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데도 언론은 이 문제에 관한 심층적인 접근을 지금까지 방기해 왔다. 이세돌-알파고 대국이 세간의 관심을 끌자, 그제서야 마치 스포츠나 연예 뉴스를 다루듯이 선정적인 보도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그 외에도 학계, 전문가 그룹에서도 적절한 준비와 대응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국이 벌어진 일주일 동안 우리는 온 사회가 인공지능의 열풍으로 휩싸여 있었지만 결국 우리 사회는 그 어떠한 성찰의 결과도 없이 ‘이 또한 지나가리’가 될 가능성이 큰 흐름으로 가고 있다. 대다수 시민들의 관심 역시 냄비처럼 끓었다가 식어 가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인류학과 미래학을 넘나드는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대다수는 잉여인간이 될 것이며, 사피엔스의 종말이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 시대’가 오더라도 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할 것이라는 낙관을 잃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인간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기술과 기계에 대한 인간의 주도성을 낙관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기술 발전을 인간이 통제하지 않고서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하지만 인공지능 혁명으로 인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게 될 우리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지금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어떤 견해를 지지하든 우리 눈 앞에 닥친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이 오로지 현명한 선택만을 해 왔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 우리는 기술이 인간을 앞지르고 있는 전대미문의 현실에 처해 있다.
“우리에게 내일은 있는가?”는 질문에 앞서, 우리는 스스로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기술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제는 답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생존해 왔던 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살아가야 한다. 축적된 지혜든, 새로운 혜안이든 공동체가 함께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이번 이세돌-알파고의 대국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가장 값진 의미다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으로 말들이 많았는데 한방에 정리해 주셨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다려 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