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란 말은 그 엄청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너무 익숙해져서 식상한 말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생활인의 감각으로는 언제쯤 내가 지금 하고있는 일에 그 변화가 닥쳐올까 하는 정도가 솔직한 걱정거리일 것입니다. 최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저널리스트인 루크 도멜(Luke Dormehl)이 쓴 ‘생각하는 기계(Thinking Machines)‘란 책을 소개하면서, 인공지능이 해도 괜찮은 7가지 일(Seven ways that AI could be A-OK)’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도입된 인공지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맥주 제조: 최근 국내에서도 자가(自家)맥주제조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만, 개인마다 선호하는 맥주맛은 다릅니다.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숫자의 맥주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금은 수많은 국산, 수입 맥주들과 하우스 맥주, 자가맥주 등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물며, 맥주 역사가 몇 백년에 이르는 나라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가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러한 고민에 착안하여 인텔리전트엑스 브루잉(IntelligentX Brewing Co.)이라는 런던의 한 맥주제조업체는 ‘강화학습(이전 실행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방법)’에 기반한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맥주를 제조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들이 만드는 4종류의 맥주에 대해 고객들이 보내는 반응을 살피고, 이러한 반응을 참고하여 맥주맛을 조금씩 변화시키도록 첨가물을 조절하는데 인공지능을 도입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는 맛은 지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맛은 차츰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사람들의 반응이 한 방향으로만 쏠릴 수 있으므로, 이를 대비하여 자신만의 특별한 ‘비밀제조법’도 탑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맥주를 시장에 내어놓은 지 1년동안 맥주제조법은 11번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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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브루잉을 알리는 인텔리전트엑스 브루잉의 홈페이지, 출처:intelligentx.ai>

2. 영화 시나리오 작성: 영국의 에파고긱스( Epagogix)란 스타트업은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영화가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릴지 예측해주는 서비스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도 조언해 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편, 올해의 런던공상과학영화제(Sci-Fi London film festival)에 출품된 선스프링(Sunspring)이란 단편영화는 고스트버스터즈, 인터스텔라, 제5원소 같은 영화들로 훈련시킨 신경망으로 대본을 작성했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의 대본으로 만들어진 단편영화 Sunspring>

3. 그림 그리기: 지난해 6월 구글이 발표한 딥 드립(Deep Dream)프로젝트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사람이 이미 만들어놓은 이미지들을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글은 인공지능을 통해 구글포토에 올려진 이미지들을 재분류하여 연속사진을 만드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딥 드림 프로젝트는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분류하는 작업 대신 이미지를 변형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인공지능은 이미지 속의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 수많은 이미지를 ‘학습’하게 됩니다. 이 학습결과를 바탕으로 사물에 대한 공통적인 특성을 추출한 다음, 인공지능 스스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입니다. 즉, 고양이를 구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고양이 사진을 학습한 다음, 그 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고양이’를 만들어내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이트(DeepdreamGenerator.com)를 통해 사용자들의 이미지를 원하는 형식으로 변형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사진필터 역할에 머무르고 있지만, ‘알파고흐(Alpha Gogh)’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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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드림제네레이터 서비스를 이용해서 평범한 사진을 르느와르 스타일 필터에 적용시킨 모습>

4. 로봇 스포츠: 움직이는 로봇에 대한 연구는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보스톤 다이나믹스사의 네발로 뛰는 로봇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는 산업용, 군사용으로 활용할 가치가 높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만약 로봇만으로 이루어진 스포츠가 생겨난다면 어떨까요? 물론, 이미 20번째나 대회를 개최한 인공지능 로봇에 의한 축구경기도 있습니다. 로보컵(Robocup)이라 불리는 이 대회는, 하드웨어(실제의 로봇 이용)와 소프트웨어(컴퓨터 프로그램 이용)로 나뉜 축구경기 이벤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축구경기만 하더라도 소프트웨어 1종목과 하드웨어 4종목으로 치뤄지며, 구조 및 가사용 로봇의 대결까지 이루어지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한편, 라즈베리파이(Raspeberry Pie,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저가의 소형 컴퓨터 메인보드)의 보급으로 인해, 이를 이용한 로봇 스포츠(자동차 경주 등)는 더 다양해질 전망입니다. 물론 라즈베리파이를 이용한 스포츠에 참여할 경우, 작동 프로그램을 코딩할 수 있는 능력은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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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로봇 부문과 구조용 로봇 부문의 경쟁 모습,  출처:www.robocup.org>

5. 인공위성 부품의 설계: 인공지능이 내부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해결책들을 경쟁시켜 더 성과가 좋은 방법을 채택하는 방식으로 나온 결과물들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와의 바둑 대결에서 보여준 ‘이상했던’ 초반의 몇몇 수들은, 바둑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상식이나 예측 능력을 뛰어넘는 것들이었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위성 안테나 설계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구부린 클립 같아 보이는 이 안테나는, 보기에는 이상하지만 시험 결과는 그 어떠한 안테나보다 우수한 성능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들이 인공지능에 내린 명령은 “규격이 가로와 세로가 각각 10센티미터이고, 구형이나 반원 형태로 송출이 가능하며, 특정 와이파이 대역에서 운영할 수 있는 안테나를 설계하라” 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서 오히려 자신이 알지 못하던 것을 배우는 운명이 시작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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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설계한 안테나의 모습, 출처:NASA.org>

6. 요리 레시피 개발: 음식에 관한 관심은 아마 21세기 초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전통음식의 조리법들이 전세계에서 서로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소위 ‘퓨전’조리법들은 어쩌면 미래의 식문화를 뒤바꿔 놓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결국 수많은 조리법들을 머릿속에 넣고 그 중에서 공통점과 연결점을 찾아내는 일이 요리사의 주된 업무가 될 것입니다. 만약 조리법만을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인공지능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이러한 조리법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합니다. 인도식 강황 빠에야(Indian Turmeric Paella, 빠에야는 스페인식 볶음밥으로 원래 사프란이란 향료를 넣지만 요즘은 강황을 대체재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 다 노란색을 띱니다), 터키-한국식 시저 샐러드(Turkish-Korean Caesar Salad), 쿠바식 랍스터 부야베스(Cuban Lobster Bouillabaisse, 부야베스는 남프랑스식 생선스튜요리입니다) 등이 바로 왓슨이 만들어낸 조리법입니다. 기존의 머신러닝처럼 왓슨은 기존 조리법들을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각 국가별 조립법들의 차이를 익히고, 심지어 맛을 조절하는 화학합성물들도 분석해서 사용법을 익혔다고 합니다. ‘요리사 왓슨의 인지 요리법(Cognitive Cooking with Chef Watson)’이라는 요리책도 냈습니다. 왓슨의 사이트(ibmchefwatson.com)에서는 요리 재료를 넣으면, 걸맞는 조리법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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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를 넣으면 조리법을 제안하는 쉐프왓슨의 홈페이지, 출처:ibmchefwatson.com>

7. 작곡: 음악과 미술은 우리가 뭉뚱그려 예술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과학기술의 밑바탕이 되는 수학과의 거리만 놓고 보자면 음악과 미술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닙니다. 음악은 수학적으로 표시할 수도 있지만, 미술은 쉽게 표현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이 창작한 미술작품보다 음악작품이 더 일찍나온 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지난 2012년 말라가대학의 스핀오프 기업인 멜로믹스(Melomics)는 자사의 기술을 이용해서 음악을 작곡하는 야무스(Lamus) 컴퓨터를 통해 몇 곡의 클래시컬(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 부르는) 음악을 발표했습니다. 이 음악들을 이용해서 이들은 앨런튜링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앨런 튜링 탄생 100주년 기념 음악회>

올해 7월에는 영국의 플리머스대학 연구진들이 웨일스 태생의 메조 소프라노 쥴리엣 포친(Juliette Pochin)과 양자컴퓨터가 만들어내는 화음이 함께 어우러지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가수가 노래를 하게 되면 그 음높이와 세기 및 작곡가의 음표들이 3초간격으로 양자컴퓨터의 두 가지 알고리즘에 전달이 되어 이를 통해 양자컴퓨터가 알맞은 음을 내보내게 됩니다. 물론 아직까지 소위 ‘클래식’ 음악의 영역에 머물 뿐이므로 우리가 쉽게 접할 수는 없고, 현대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만큼 큰 영향력을 미치지도 않지만 ‘슈퍼스타 K’ 대신에 ‘슈퍼스타 A.I’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조금 기분이 이상해지기는 합니다.

<쥴리엣 포친과 양자컴퓨터의 공연 영상>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은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즐거움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비록 경제적인 목적과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손으로 음식을 만들거나, 노래를 짓거나, 이야기를 만드는 일 등은 그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경제적인 수단의 영역으로만 머무르는 탓에 결국에는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려야 할 상황이 온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소비의 즐거움’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소비’만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인공지능의 역할들과는 달리 위에서 언급한 일들이 우리에게 즐거움으로 남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의 즐거움을 되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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