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닮았는가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묻는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을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아이가 잠시 후에 대답한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교사가 말했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교사는 다시 아이들에게 똑 같은 질문을 한다. 아이들은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교사가 아이들을 보고 그 답도 틀렸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그 이유를 물었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상을 깨웠다. 2016년 3월,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사람이 만든 가장 복잡한 게임, 그래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바둑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사람이 만든 피조물이 그 창조자 앞에 압도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날 이후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을 이야기한다. 인공지능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다. 사법부의 수장이 근엄한 판사들 앞에서 인공지능이 법조인을 대체할 가능성을 언급하고, 정부는 수천억을 투자해서 구글의 인공지능을 따라잡겠다고 공언하고,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는 인공지능의 대중화를 들고 나왔다.

컴퓨터 언어를 배우고 컴퓨터처럼 생각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사람처럼 사고하는 기계를 만들었는데 사람은 그 기계를 닮고자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윤리를 어떻게 가르칠지를 고민하고 인공지능이 창조한 예술품의 권리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일본에서는 로봇의 장례식이 열리고, 영국에서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섹스로봇과 관계를 하는 것이 불륜인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비서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람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소셜로봇은 불완전한 사람 관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장미빛 미래를 이야기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지배하는 상황을 경고한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엄청난 변화의 흐름에 우리는 혼란스럽다. 인공지능은 사람을 닮아가고, 사람은 인공지능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본다. 과연 누가 누구를 닮아가는 것일까.

우리 주변을 떠도는 유령

아마존은 2014년에 ‘결제예측배송(anticipatory shipping)’라는 이름의 특허를 등록하였다. 고객이 사이트에 접속해서 로그인하는 순간, 물류창고에서는 그 고객이 살 것으로 예상되는 물건의 배송절차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 특허는 우리 주변에 소리없이 스며들어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 나가는 인공지능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지만 인공지능은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어왔다. 검색과 전자상거래, 광고 등에서 놀라운 컴퓨팅 능력과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우리가 온라인 활동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단순히 인간의 활동을 도와주던 인공지능은 네트워크에서 쏟아지는 빅데이터와 한층 고도화된 기계학습에 힘입어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에 활용되기 시작되었고 일부에서는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언론, 금융, 법률, 의료, 자동차 등 높은 수준의 지적능력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로 영역을 확대해 왔고,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예술분야까지 넘보고 있다.

인간을 대신해 기사를 쓰는 로봇기자는 <에이피>, <로이터>, <블룸버그>등 외신에서 날씨, 스포츠, 재난 및 재해 등 정형화된 영역에서 놀라운 속도와 정확한 문장으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로펌회사인 베이커앤호스테틀러(Baker&Hostetler)는 IBM이 만든 인공지능 로스(Ross)를 파산관리 변호사로 공식 선임하였고, 미국과 영국의 대학 연구팀이 만든 인공지능 판사는 유럽인권재판소가 진행중인 사건의 재판결과를 79%의 정확도로 예측해 내었다.

대량의 데이터분석과 찰나의 판단이 필요한 금융 분야는 오래 전부터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왔고 전 세계 금융거래의 90%가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질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마침내 2014년, 홍콩의 딥날리지(Deep Knowledge) 벤처캐피털은 생명과학 벤처기업을 전문으로 분석하는 인공지능 ‘바이탈(Vital)’을 투자 이사회의 임원으로 선임하였다.

IBM 인공지능 왓슨(Watson)은 의사의 자리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미 주요 암병원에서 진단과 치료법을 조언하고 있다. 미국종양학회의 자료에 의하면, 대장암, 직장암 등 주요 암에 한해 왓슨의 진단 정확도는 90%를 넘어서고 있다. 왓슨은 290여 종의 의학저널과 전문문헌을 비롯해 교과서 200종, 1천200만 쪽에 달하는 전문자료를 학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Tesla)자동차가 최근 발표한 자율주행기능 ‘오토파일럿(Autopilot)’은 사람의 노력이 일체 개입되지 않은 가운데 일반 도로를 자율 주행할 수 있는 수준에 있다. 사람이 필요없어진 것이다.

창의성은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가장 높은 수준의 인간 고유 능력이라고 여겨져 왔다. 다시 말하면 그 동안 우리는 기술이 사람을 뛰어 넘을 수 없는 분야가 있다고 믿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2016년에 만난 수많은 인공지능 예술가는 우리의 이같은 통념을 깨뜨리고 말았다.

인공지능은 미국의 대표적인 시트콤 드라마, <프렌즈,Friends>의 후속편 대본을 만들었고, 비틀즈풍의 노래 <아빠의 차, Daddy’s car>를 작곡했고, 구글의 ‘딥드림(Deepdream)’이 만들어낸 미술품은 경매에 부쳐져서 9만7천 달러의 거래가 성사되었다. 1분만에 시를 창작하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인공지능이 쓴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라는 단편소설이 공모전 1차 예선을 통과하였다.

인공지능이 오래전부터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해왔고, 최근 산업의 각 분야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마치 유령처럼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짧은 시간에 퍼져나가고 있어 우리가 그 존재를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사람이 되어가는 인공지능

단순히 사람의 지능적 행위를 복제하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의 가상 주체로서 사람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개념의 인공지능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비록 형체가 없이 음성과 문자만으로 소통하는 인공지능이지만, 이미 인간 관계의 대부분이 SNS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네트워크 시대에 늘 사람과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요즘 전화 혹은 메신저로 대화했던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경우를 쉽지 않게 만나게 된다.

애플의 시리(siri)는 사용자가 음성으로 명령하면 연락처나 개인 일정 등을 알려준다. 웹상에서 검색 내용을 바탕으로, 날씨나 주가 등 사용자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음성으로 해주기도 한다. 아마존이 2015년 3월에 출시한 ‘에코(echo)’라는 이름의 작은 원통형 기기는 인공지능이 탑재돼 음성을 통해 사람과 대화하고, 주변의 ‘스마트 기기’와 연결하면 음성으로 기기들을 작동시킬 수 있다. 최근에 일본에서 출시된 ‘게이트박스(Gate Box)’는 홀로그램으로 캐릭터를 투사하여 사용자와 감성적 관계가 가능하다.

인공지능과 메신저가 결합된 챗봇은 사전에 준비된 문장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여 사람들과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으로 태어난 지 몇일만에 사라졌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챗봇 ‘테이(Tay)’를 대신하여 최근에 등장한 ‘조(zo)’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는 하트를 날리는 센스로 대화를 즐겁게 해준다. 조지아공대 컴퓨터 공학과 수업을 돕는 조교 중 한 명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300여 명의 학생이 쏟아내는 1만 개가 넘는 수업 관련 질문의 40%를 IBM이 만든 ‘질 왓슨(Jill Watson)’ 이라는 인공지능이 답을 했고, 학생 중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음성과 문자만으로 사람과 관계하던 인공지능은 로봇의 몸을 빌려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람과 대화하고 감성을 교감하는 이른바 소셜로봇(Social Robot)이다. 소셜로봇은 사람 혹은 다른 대상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로봇을 말한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제작한 소셜로봇 ‘페퍼(Pepper)’는 귀여운 외모와 영리함으로, 독거노인들과 노인요양병원의 반려자로, 정신지체 아동의 친구로 사랑받고 있다. 상점에서 손님을 응대하기도 하고, 보험상품을 판매하거나, 제조사의 판매상담원으로 사람과 경쟁하며 그 역할을 늘려가고 있다. 특정분야에서 사람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대상으로서 사람 역할을 온전히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소셜로봇을 사람보다 더 충실한 상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언제나 자기에게 온전히 집중해주고, 일관된 태도로 응대해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소셜로봇은 그 자체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아직까지 턱없이 부족하지만, 사람 관계의 약점을 메워주면서 자기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16년에 일본의 절에서 있었던 소니 로봇 ‘아이보(Aibo)’를 위한 집단 장례식에서, 아이보의 소유자(?)들이 보여주었던 애틋한 감정은 이제는 로봇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소셜로봇 페퍼는 2015년 출시 이후 1년만에 1만 대가 넘게 보급되었으며, 페퍼와 유사한 형태의 소셜로봇들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스트레티지 어낼리틱스는 2022년까지 3천4백만 대의 서비스 로봇이 판매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인구통계조사에 소셜로봇의 숫자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법하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사람의 지능행위의 극히 일부분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출발하여, 형체를 갖추고 스스로 학습하며 사람과의 관계가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 인간을 닮은 인조물을 만들고자 한 인간의 오랜 꿈이, 길고 어려운 시간을 보낸 후 마침내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짧지 않은 역사와 압축적 발전

인공지능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은, 유명한 1950년 논문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에서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기계도 아이들과 유사하게 경험으로부터 학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장하였다. 컴퓨터에게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지게 할 수 있다는 ‘인공지능’의 꿈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수십년 동안, 하드웨어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개발은 기대와는 달리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사람처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 예상보다 훨씬 어렵고 그 시대의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꿈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잊혔던 인공지능 연구는 1990년대 후반에 문자인식, 음성인식, 이미지 인식 등 데이터 입력방식과, 의학진단 같은 응용분야에 집중함으로써 돌파구를 찾았다. 1997년, IBM의 ‘딥 블루(Deep blue)’가 체스 세계 챔피언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인공지능은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2011년 IBM의 왓슨이 텔레비전 게임쇼 ‘제퍼디(Jeopardy)!’에서 사람을 꺾고 우승한 사건은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의 인공지능과 관련된 진보는 2010년경에 시작되었으며, 상호의존적인 세가지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것은 빅 데이터(Big data)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알고리즘, 그리고 강력한 컴퓨터이다. 인터넷은 지구상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과 수십억의 기계를 네트워크로 편입시키면서 광범위하고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만들어 내었다. 인간의 처리 용량을 넘어서는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극적으로 개선된 기계학습 접근법과 알고리즘을 필요로 하였고, 그 데이터는 기계학습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자료라는 점에서 상호의존적이다. 또 기계학습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컴퓨팅 능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전제로 가능했다.

이 기간 동안의 발전속도는 인공지능 전문가조차 놀랄 정도였다. 인간의 오류율이 5%인 이미지인식 문제와 관련하여, 인공지능 오류율 최고치는 2011년의 26%에서 2015년 3.5%로 개선되었다.

앞의 세가지 요인이 인공지능의 진보를 가능하게 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 요소는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대표되는 기계학습 알고리즘이다. 딥러닝은 인간의 정보처리 메커니즘을 모방한 것이다. 우리는 이 기간에 있었던 생물학, 화학 등 기초과학과 인지과학, 신경과학 등 인간의 지능행위에 관련된 분야의 눈부신 과학적 성과에 주목해야 한다. 이 성과들은 그 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람의 지적⠂정신적 메커니즘의 일부분을 밝혀냄으로써 인공지능 발전의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인공지능 역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그 모델인 인간의 지적 행위에 대한 우리의 지식 수준에 상응하여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의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이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극히 부분적이기 때문이다.

②편에서 계속됩니다

 

이 글은 2017년 1월에 재창간한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협동조합 <소요>, 이재포 이사장이 기고한 ‘뫼비우스띠, 인공지능과 사람’을 재수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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