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공간에서 로봇의 활동 영역은 제한이 없다. 공항이나 쇼핑센터 등에서 경비 업무에 주력하던 로봇이 고급 호텔에서 일자리를 얻고 있다. 미국 사비오크(Savioke)사의 ‘릴레이(Relay)’ 로봇은 이미 전세계 70여개 유명 호텔에서 근무한다. 호텔 이용객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빠르게 전달하는 게 주 업무였는데 기능이 확장되면서 역할이 커지고 있다.
라스베가스 컨벤션센터 근처의 르네상스 호텔도 특별한 직원들을 두고 있다. 91cm의 키에 45kg 정도의 몸무게를 지닌 두 대의 ‘릴레이’ 로봇은 몸체에 ‘엘비스(Elvis)’와 ‘프리실리아(Priscilla)’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몸체 위에 커다란 액정이 달려있어 문자로 의사를 표시한다. 호텔 이용객이 주문한 치약이나 스낵 같은 물품을 전달한다.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스스로 객실을 찾아가 투숙객에게 도착 사실을 알리고 물건을 건네준 뒤 로비로 돌아온다. 배달 시간은 평균 3분 50초로 사람보다 훨씬 빠르다.
여행자가 숙박업소를 찾을 때 필수로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 연결이다. 호텔이 이용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항의 역시 인터넷 연결이 느리거나 와이파이(wifi)가 잘 터지지 않을 때라고 한다. 호텔측이 문제를 미리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릴레이’ 로봇은 이런 불편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호텔 곳곳을 수시로 돌아다니며 와이파이의 강도를 실시간으로 점검한다. 이상이 발견되면 프론트 데스크와 관계 직원에게 연락해 곧바로 해결할 수 있게 만든다.
호텔의 객실 복도에 놓인 카트나 쓰레기, 음식물 그릇 등은 이용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속히 치워야 하지만 사람이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만큼 일손이 많이 가고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린다. ‘릴레이’ 로봇은 호텔 순찰 업무도 맡고 있다. 호텔 각 층 복도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복도에 장애물이 있거나 치워야 할 물건이 있으면 즉각 보고해 항상 청결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호텔 로봇은 이런 실무적인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이용객들과의 교감을 통해 만족도를 높이고 호텔을 다시 찾게 해야 한다. ‘릴레이’는 투숙을 위해 프론트 데스크 앞에서 기다리는 고객들, 호텔 로비나 라운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소통한다. 농담을 건네고, 호텔의 정보를 제공하고, 만족도 조사를 하기도 한다. ‘릴레이’ 로봇은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 2018에 선보였고, ABC 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CES 2018에는 LG가 만든 로봇 ‘클로이(CLOi)도 모습을 드러냈다. 세 가지 유형의 ‘클로이’ 로봇은 호텔과 공항, 슈퍼마켓 시장을 노리고 있다. 로봇의 몸체에 슬라이딩 방식의 선반을 탑재해 호텔 이용객에게 24시간 음식물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다른 유형의 ‘클로이’는 고객의 짐을 객실까지 운반해주는 포터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로봇의 자동 결제 시스템을 통해 호텔 이용객이 카운터를 거치지 않아도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할 수 있게 만든다.
288개의 객실을 갖추고 2018년 1월에 문을 연 쉐라톤 로스앤젤레스 샌 가블리엘 호텔(Sheraton Los Angeles San Gabriel Hotel)에는 8대의 로봇이 취업했다. 아이톤(Aethon)사의 ‘터그(TUG)’라는 로봇이다. 병원에서 의약품 운반용으로 주로 쓰였는데 호텔로 업무 영역을 넓혔다. 122cm 크기의 이 로봇들은 호텔을 방문한 고객들을 맞이하고, 호텔 내부 정보와 찾아갈 곳을 안내하고, 투숙객의 짐을 운반하고, 고객이 주문한 음식물이나 필요 물품을 객실에 전달한다.
호텔의 경쟁력은 최상의 서비스에 있다. 지금까지는 온전히 사람의 영역이었던 이 곳에서도 로봇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로봇을 채용한 호텔들은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을 도와 서비스의 속도와 질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홍보와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는 지금으로서는 틀리지 않은 말 같다. 로봇의 기능이 더욱 고도화 하고 사람보다 몇 곱절 일을 더 잘하는 상황에서도 호텔이 같은 생각일지는 알 수 없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