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 수 감소로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 영국 교회의 현실은 통계로 확연히 드러난다. 2017년 영국 사회의식 조사(British Social Attitudes) 결과를 보면 성인의 53%가 종교가 없다고 응답했으며,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 신자는 15%에 불과했다. 젊은 층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 18세에서 24세 미만의 경우 교회에 다니는 비율은 3%에 머물렀다.
주일에도 찾아오는 이들이 없어 교회가 텅 비어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영국 교회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게 첨단 디지털 기술의 수용이다. 교회 지도부가 AI 스피커의 선두 주자인 아마존의 알렉사(Alexa)를 신앙의 반려자로 공식 채택했다. 교회가 개발한 앱은 알렉사를 통해 신앙 상담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
알렉사를 불러 물어보기만 하면 30가지 넘는 신앙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치 성직자처럼 신에 대한 궁금증에 답변하고, 성경에 대해 알려주고, 십계명이나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들려주고, 기도를 해주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가까운 교회를 안내하기도 한다. 영국 교회는 앞으로 구글이나 애플의 기기에서도 이게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알렉사에는 종교 관련 다양한 콘텐츠가 탑재되어 있지만 교회 지도부가 나서 이렇게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처음이다.
출처 : 영국 성공회 홈페이지 캡처
존 센타무(John Sentamu) 요크 대주교는 이와 관련해 영국 가구의 4분의 1이 스마트 기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교회 신자들이나 다른 방법으로 신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알렉사의 기술을 선보일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옥스포드의 주교인 스티븐 크로프(Steven Croft) 박사는 “교회는 접근 가능하고 의미 있는 방법으로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디지털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영국 교회의 이런 흐름은 교회의 갱신 및 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온 세상이 빠르게 디지털로 진입한 상황에서 첨단 기술의 활용은 쇠락해가는 영국 교회가 찾은 해법이다. 젊은이들이 종교를 외면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의 방식과 문화를 통한 접근을 수용해야 한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영국 교회는 헌금 방식도 바꾸었다. 지갑 속에 현금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 상황을 감안해 애플 페이(Apple Pay)나 구글 페이(Google Pay)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교회에 비접촉식 카드 단말기를 도입했다.
종교개혁 500주년 해였던 20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나붙었던 독일의 비텐부르크에 로봇 목사가 등장했다. 5개국 언어로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 로봇 목사는 기술의 진보가 미래 교회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인공지능으로 상징되는 기술의 진화는 생활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고, 종교도 비켜갈 수 없게 만든다. 신앙의 본질은 변하지 않겠지만 어느 종교든 전통 방식만 고집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AI 스피커를 채택한 영국 교회는 그런 점에서 선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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