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한 IT 업체를 찾아서 ‘디지털 뉴딜’이라고 이름 붙인 정책의 방향을 밝혔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실물 경제 위기를 이겨내고 디지털 기반 경제 성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공개한 것입니다.

미국 대공황시기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연방정부 주도로 대규모 토목 공사를 비롯한 일련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뉴딜’ 정책입니다.

이번에 발표한 정부의 ‘디지털 뉴딜’ 정책의 핵심은 민간과 정부에서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를 과감하게 개방하여 디지털 경제를 활성화하고, 인공지능 등 관련 산업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디지털 뉴딜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디지털경제를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가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디지털 뉴딜은 앞으로 디지털 경제에 기반이 되는 ‘데이터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이 데이터 댐에는 우리 공공과 민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생성되는 데이터들이 모이게 되고, 그것을 표준화하고 서로 결합해서 가공하고 이것을 또 개인정보가 보호되는 비식별 정보로 만들어낸다”고 설명합니다.

만들어 진 데이터 댐은 인공지능을 더 똑똑하게 만들고, 인공지능 네트워크는 혁신 산업과 서비스를 창출하고 그 과정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코로나 경제 발전의 기반을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수집하고 표준화하고, 가공 결합하는 과정들은 전부 사람의 작업에 의해 이뤄져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라는 기대도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강원 춘천시 남산면 더존비즈온 강촌캠퍼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디지털경제 현장방문’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의 간담회를 보도한 여러 기사를 보면서 한 장의 사진에 주목했습니다. 대통령의 뒤에 디지털 뉴딜의 개념을 표현한 일러스트가 보이고, 디지털 댐에 담겨진 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직원 근태 및 출입 관리’, ‘사내보안 CCTV’, ‘헬스케어 솔루션’, ‘광고대상 분석’ 다른 사진에는 ‘스마트폰’과 ‘cloud’도 보입니다. 여기에는 더해서 국가가 보유한 광범위하고 방대한 정보(각종 통계, 개인정보 등)도 데이터 댐에 포함됩니다. 물론, 정부가 주장하는 것은 이 모든 정보를 ‘비식별화’, 즉 데이터에서 신분을 알 수 있는 상태로 제공된다는 것입니다.

늦었지만, 디지털 전환에 적극 대응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뉴딜’ 정책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그 정책의 철학과 실행 방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먼저,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비식별’ 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초연결 사회에서 이미 개인은 일상의 모든 행위와 의도가 디지털로 기록이 됩니다. 편리한 인터넷 서비스, 곳곳에 있는 CCTV와 차량 블랙박스, 신용카드사용 내역, 내비게이션 이동 기록, 상품 구매 내역 등은 과거에 한 사람이 평생 남길 기록보다 많은 흔적을 하루에 남기고 있습니다. 이런 정보들은 개별적으로 주어질 때는 그 행위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지만, 다양한 흔적으로 연계하면 알 수가 있습니다. 강력한 정보처리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은 그러한 작업을 더욱 빠르고 쉽게 해줍니다. 현실적으로 ‘비식별’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관리하는 주체의 부주의와 악의적 의도를 가진 집단에 의한 개인 정보의 누출은 디지털 댐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미 우리는 대규모 정보 누출을 여러 차례 경험했고, 어떤 방어 수단도 완벽하지 않은 것을 고려한다면 한 곳에 모인 거대한 데이터는 더 큰 위험을 의미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이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활용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에 대해 강력한 법적 제도적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이 경제발전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것입니다. 과거 국가주도 경제를 개발독재라고 비판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뉴딜은 모든 사람의 인권과 프라이버시라는 값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뉴딜 정책은 소수의 기업에게만 혜택을 줄 것입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사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규모 네트워크 기반과 자본력을 가지고 있고, 인공지능과 같은 고도 기술을 개발하고 보유할 수 있는 소수의 거대 기업만이 경쟁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정책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회구성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모인 거대한 데이터 댐은 소수의 기업에게만 기회를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디지털 댐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일자리에 대한 정부의 시각은 비현실적이고 안이합니다. 사례로 들었던 데이터 처리 업무는 단순 노동과 낮은 임금으로 이미 미국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온라인상의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를 정제하는 작업을 하는 소위 ‘유령 노동자(Ghost Work)’들은 하루 10시간 노동에 월 100만원 수준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일자리가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할까요?

‘디지털 뉴딜’과 ‘데이터 댐’이라는 멋진 수사와 잘 기획된 행사에서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넓고 깊은 변화를 가져온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는 통찰과 철학은 볼 수 없었습니다. 독일은 일찍이 제조업에 디지털을 접맥한 ‘산업 4.0’ 정책과 이로 인한 노동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 4.0’을 사회 구성원의 긴 논의 과정을 통해서 합의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영국 의회는 ‘인공지능의 윤리적 사용’에 있어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전략을 제안했습니다. 중국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인재 양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핀랜드는 국민의 5%를 인공지능 전문가로 양성하겠다는 목표 하에 관련 교육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뉴딜에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뉴딜 정책은 댐을 건설한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초기 정책은 공공시설 건설과 농가소득 부흥 등 광범위한 경제 정책을 포함하고 있고, 2기 뉴딜에서는 취로사업청과 같은 사회안전망의 확보와 연방 예술 프로젝트 등 문화 예술 분야를 진흥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으로 확장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뉴딜 정책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자본주의에 적응하기 위한 사회와 국가의 노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구상을 구체화해 내달 디지털 뉴딜을 포함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국가와 구성원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방향 전환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실행을 위한 마스터 플랜도 마련되기 전에 ‘선언’으로 주어졌습니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침묵하고, 관련 기업의 주가만 폭등하는 현실이 디지털 뉴딜의 불길한 미래를 점치게 하는 전조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관련 기사 보기: 文대통령 “한국판 뉴딜, 후버댐처럼 데이터댐 만들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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