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이나 성희롱을 고발하는 미투(Me T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더니 과거 학교에서의 폭력 행위를 폭로하는 또 다른 미투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학교폭력을 줄인 말 학폭은 일상적인 용어로 굳어졌다. 학창 시절에 겪었던, 지금도 학교에서 진행중인 학폭의 뿌리는 깊다.

미투는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로 되살려 그때의 강자이면서 가해자였던 이들을 무릎 꿇게 만든다. 미투 운동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6년 미국의 여성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그(Tarana Burke)가 성적 학대와 성폭행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처음 이 문구를 사용했다. 그리고 2017년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제작자이자 프로듀서였던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의 성추문 폭로가 기폭제가 되어 전세계에 물결쳤다.

성적 폭력이나 학교 폭력 모두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야만적 행위다. 세월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고통으로 남는다. 폭력을 자행한 가해자가 뉘우치지 않은 채 유명 인물로, 영향력 있는 인사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여전히 강자의 모습으로 비칠 때 약자이면서 피해자였던 이들의 좌절감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방송과 연예, 스포츠 분야에서 촉망받던 이들이 학폭의 가해자로 지목돼 심판을 받고있다. 트로트 가수가 방송에서 하차하고, 배구 선수가 무기한 출장 정지와 함께 국가대표 자격을 잃었다. 뒤늦은 후회와 사과가 있었지만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또 다른 폭로로 이어졌다. 성 폭력 미투가 그랬던 것처럼 학폭 미투의 화살이 누구에게 날아갈 지 알 수 없다.

성 폭력과 학폭이 세상에 드러난 게 갑자기 급증해서 그런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거에는 가둬두고 속으로만 새겼을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었지만 이제는 그 응어리를 혼자가 아닌 다중과 함께 풀어낼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여전히 강자인 그들을 상대로 함께 분노하고 연대할 수 있는 지원군은 인터넷과 SNS다.

넷플릭스의 멕시코 드라마 모나르카는 재벌기업의 후계자를 둘러싼 형제들의 암투를 그린다. 이권을 위해 권력과 결탁하고, 마약조직과도 손을 잡는다. 모든 게 돈으로 연결되고,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돈이 먹히지 않는 암초를 만난다. 미성년 손자의 성폭행 사실이 SNS로 알려지게 된다. SNS를 타고 비난 여론이 비등한다. 돈에 맛들린 부패한 사법부이지만 심판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학폭은 물리적 가해 행위만 있는 게 아니다. 교묘하고 은밀하게 끼리끼리 이뤄지는 집단 괴롭힘과 집단 따돌림은 감춰진 폭력이다. 이런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교실이나 으슥한 장소가 아닌 열린 공간을 표방하는 인터넷과 SNS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인터넷과 SNS는 정의를 외치고 분노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용광로 역할을 하지만 편을 가르고 따돌리고 적을 만들며 폭력을 조장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학폭 미투가 학교 폭력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어떤 종류의 폭력도 배격해야 한다. 묵인하고 방조하며 암암리에 만연하던 체육계의 폭행과 가혹 행위를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함은 물론이다. 대중에게 노출되고 공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은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자기 관리에 더욱 엄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주었다.

인터넷과 SNS는 생활이다. 소통이고 여론이다. 하지만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무책임한 공간이기도 하다. 극단에 빠지고 위험 수위를 넘나들 수도 있다. 그게 폭력이 되고, 폭력을 조장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휘둘리지 않는 공정한 자기 잣대의 역량, 그것이 열린 공간을 정화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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