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멀리 떨어져있는 가족과 친구, 연인을 이어주는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다. 우편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개인이 인편으로 안부나 소식, 의견을 전했다. 전화가 발명되면서 편지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무 때나 목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글을 써서 보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디지털 혁명으로 말과 더불어 글이 다시 부활했다. 바로 문자다. 문자의 전통적 의미는 인간의 언어를 적는 데 사용하는 시각적인 기호 체계, 즉 한글이나 한자, 로마자 등을 말한다. 이게 정보통신 시대에 휴대 전화에서 글자판을 이용하여 문자로 된 내용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기능이나 글을 뜻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문자는 참 편리하다. 전화처럼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면서도 말로 하기 힘든 내용을 전달할 때 유용하다. 1:1 소통만 아니라 다자간 대화도 가능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만 실상은 말하는 기능보다는 문자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사용 빈도만 따지면 휴대전화가 아니라 ‘휴대문자기’가 맞을 것 같다.

이렇게 유용한 문자를 두고 요즘 말이 많다. 특정 정치적 지향을 가진 이들이 그 집단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문자를 쏟아 붓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편인데도 그렇다. 이른바 문자폭탄이다. 정치권에서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그 역기능에 대한 논란이다.

폭탄의 의미는 부정적이다. 인명 살상이나 구조물 파괴를 위한 폭발물을 일컫는다. 미팅이나 소개팅을 할 때 외모가 떨어지거나 분위기를 깨는 사람을 낮춰 부를 때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폭탄의 특징은 누군가를 겨냥하는 데 있다. 문자폭탄도 그 대상을 특정 짓는 ‘좌표 찍기’와 붙어 다닐 때가 많다.

문자를 통한 의사 표출은 실시간 여론을 보여주고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의견 개진 수단의 역할을 한다. 정책의 방향을 정하고 속도는 내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이게 단일대오의 일사분란함으로 일방적 주장만 강요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다양한 사고를 용납하지 않는 편협함으로 오히려 민주주의를 왜곡할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만장일치의 한 목소리만 있는 게 아니다. 다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대법관들은 자신의 소수 의견을 기록으로 남긴다. 2020년 87세를 일기로 사망한 미국의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 긴즈버그가 대표적이다. 평생을 보수의 틈바구니에서 소수 의견을 고수하며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증진 같은 값진 성과를 일구었다.

정치인을 향한 문자와 문자폭탄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가 자신의 개인적 의견 개진이라면 후자는 조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전자가 자유로운 사고에 기반한다면 후자는 응징 성격의 집단 린치에 가깝다. 문자폭탄은 여야가 따로 없다. 탄핵을 찬성했던 이들과 내부 비판 세력이 모두 그 피해를 경험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집단적인 문자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자가 지닌 다양한 기능성이 아니라 이런 행태에 가담하고 부추기는 이들의 경직성이 문제다. 정치에서 최고의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는 종교도 도덕적 가치도 아니다. 차선을 선택할 뿐이다. 문자폭탄은 상대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하는 괴롭힘 행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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