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아이작 뉴턴의 위대함과 그의 겸손함을 동시에 표현할 때 곧잘 인용되는 문장입니다. 뉴턴은 이 문장을 1676년 그의 경쟁자였던 과학자 로버트 후크와 공로에 관해 언쟁을 벌이는 편지에서 사용했습니다.
인류가 기아와 질병, 그리고 자연의 재해로부터 벗어나서 지금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위대한 지성과 지도자에 힘 입은 바가 큽니다. (물론 아직도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내가 지금 다른 어떤 세대 보다 더 풍요롭게 평온한 삶을 살아온 것은 부모의 굽은 등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굶지 않고, 어느 사회보다 높은 교육을 받고, 전쟁과 질병의 고통을 모르고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부모 세대의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자식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신 부모의 굽은 등 위에 얹혀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 우리는 지금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내어주고 있을까요? 우리 사회에서 누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부모들이 자식에게 내어주는 것들도 굽은 등을 보여주시는 부모님 세대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더 가족적인 모습일지도요.
너무 가족이나 내 아이만 소중해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부분이 더 부족해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득바득 사는 것보다 인생을 더 즐겼으면 싶기도 하고요.
작은 것들에 행복해하면서요.
다만 작은 것들에 행복하기에도 힘들어지는 현실이 무서워지고 있을 뿐입니다.
요즘 같은 때에는 어느 날 갑자기 눈 뜨고 가난해졌다는 레바논의 어느 아이 이야기처럼 평소랑 같은 일상이 무너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듭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시키고 싶은데 뭘 시켜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내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같이 찾아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