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 교수의 <물리학 강의>를 읽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물리를 들었던 것도 아니고, 수학적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700쪽이 넘는 책을 읽어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내용을 20%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읽기를 중단하지 않는 것은 물리학을 알아야 할 필요성도 있지만, 매 챕터마다 파인만 교수가 말 그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혜”를 한마디씩 던져주기 때문입니다

1권 41장에서 파인만 교수는 물질의 특성을 원자의 운동으로 설명합니다. 당시로서는 학자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양자물리학 이론으로 기체의 운동을 풀어나가면서, 관련 분야의 사전 학습이 되어있지 않아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물질의 특성을 밝히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법칙에서 특성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할 단계가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또 실제의 원자들이 고전역학이 아니라 양자 역학의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 주제를 왜 지금 다뤄야 하는가? 확률 이론과 양자 역학을 배우고 난 후에 이 내용을 강의하면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피할 수 있을 터인데, 왜 굳이 무리를 자초하고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이 주제는 너무나 어려워서 천천히 배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단 지금 대략적인 아이디어를 습득해 놓으면 나중에 물리학을 더 배웠을 때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것은 이해를 하는데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찍 접하는 것이 좋다는 그의 이야기는 논리적으로는 수긍이 가지만, 사람들이 선뜻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늘 무엇인가를 배울 때는 쉬운 것부터 배우고 어려운 것은 그 후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무엇인지, 학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서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서 어느 쪽이 학습에 더 도움이 되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저는 파인만 교수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배우는 내용의 난이도를 나누는 것도 자의적인 것처럼 보이고, 무엇보다 사람의 지적 능력이 단계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에 대해서 수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복잡해지고 변화는 빨라지는 현실에서 배울 것은 갈수록 늘어나고 어려워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움은 더 일찍 시작되어야 하고, 더 깊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 아닐까요?

어렵고 힘든 것은 빼고 미루기만 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파인만 교수가 보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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