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 화단의 기둥에는 ‘전면주차’라는 글이 쓰여진 코팅된 종이가 걸려있습니다. 그 앞에는 비슷한 대수의 차가 앞으로, 그리고 뒤로 주차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심히 그곳을 지나갑니다. 때로는 아이 손을 잡고 지나가는 엄마도 있는데 그냥 지나칩니다. 궁금한 것도 생각거리도 많은 재미있는 광경인데 말입니다.
만일 내가 손주와 함께 – 그 날이 올지 모르지만 – 그 종이를 본다면 이런 대화를 할 것 같습니다.
“어? 저게 뭘까? 글씨가 쓰여져 있네? 읽어볼까? ‘전면주차’라고 써 있네.
‘전면주차’가 무슨 뜻인지 알겠어? 차를 주차할 때 앞바퀴부터 들어오라는 이야기야.
왜 ‘앞으로 주차하세요’라고 하지 않고 ‘전면주차’라고 했을까?
‘전면주차 = 前面駐車’, 오래 전에 우리가 사용하던 중국의 문자, 한자로 표기한 거야.
왜 전면주차를 하라고 했을까?
자동차에서 나오는 가스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저 종이를 보고도 뒤로 차를 주차한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앞으로 주차하는 것보다 뒤로 하는 것이 더 쉬울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차를 뒤로 주차하는 것은 나쁜 행동일까?”
미래의 손주가 질려서 도망가려나요?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신은 비록 책을 읽지 않지만, 아이들의 독서 교육에는 열과 성을 다합니다. 유명한 책, 어려운 책을 읽히고, 감상문도 쓰게 하고, 토론도 시키고, 이름도 팬시한 ㅇㅇ독서 교육도 경험하게 합니다. 그런데 딱해 보이는 것은 그런 훌륭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정작 일상에서 만나는 짧은 문구도 어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책 읽기’교육은 넘쳐나는데 ‘읽기’ 교육은 뱃속에서 다 마치고 나온 것처럼 아무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글로 쓰여진 것이 책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길거리의 간판과 안내문, 각종 통신문, 계약서와 같은 법적 문서, 사용 설명서 등 다양한 형식이 존재합니다.
또 글은 종이 위에만 있지 않습니다. 길 거리 간판에도, 아스팔트 길 위에도,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이 디지털 기기의 스크린 위에서 반짝입니다.
글은 쓰여 있는 매체와 형식이 달라도 ‘읽는 행위’의 본질은 똑같습니다. 그것은 궁금하거나 관심 있는 글을 찾아서 읽고, 내용을 이해하고, 지식을 확장하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입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독서 교육의 비극은 ‘추천된 책만을 이해하는 흉내 내기’를 가르치는 데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매체와 형식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요? 생활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있으면 관심을 가지고,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세요.
아는 것이 없어서 힘들다구요? 스마트(폰)과 AI는 그럴 때 사용하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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